《가수 이현우(37)는 여성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여성팬들은 그를 “‘사귀고 싶은’ 남자이기보단 ‘(함께) 살고 싶은’ 남자”로 평한다.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란다. PD들은 “안정감의 90%는 그의 목소리에 있다”고 했다. 이현우는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6년 넘게 진행중인 MBC ‘수요예술무대’에 더해 최근 SBS ‘휴먼스토리-여자’에서 내레이션을 맡았다. SBS 라디오 ‘이현우의 뮤직라이브’도 진행하고 있다. 모두 말로 승부하는 프로그램들이다. 그는 2일 시작된 MBC 월화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에서 연기자로도 데뷔했다. 1991년 노래 ‘꿈’으로 등장한 그의 인기는 천천히 그러나 추락을 모른 체 높아가고 있다. 이현우를 알려면 그의 ‘말’을 알아야 한다. 스피치 및 음성공학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그의 말하기를 파헤쳤다.》
● 말하기의 비밀
이현우는 ‘다변고성(多辯高聲)’의 시대에 말을 고르고 아낀다. 꼭 필요한 단어를 필요한 시기에만 사용하기 때문에 정제되고 깔끔한 맛을 준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아∼” “그∼” “저∼”처럼 군더더기 단어를 자주 쓰지만 이현우는 인터뷰에도 이런 말을 쓰지 않는다. 생각이 필요한 대목에선 어떤 소리도 내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말에는 짧은 휴지기가 군데군데 있으나 흐름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또 조급할 때나 지루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감격 받았을 때나 그의 말하기 속도는 거의 똑같다.
그는 느리고 다소 ‘답답한’ 말의 전개로 듣는 이의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다음 말을 기다리게 한다. 이런 기대심리가 형성되면 웬만한 얘기에도 웃음이 나온다. ‘수요예술무대’에서 이현우가 “네. (2∼3초간 침묵) 다음 순서는요?”라고만 해도 폭소가 터지는 것도 이런 원리. 이런 의사전달방식은 팬 입장에서는 ‘시적(詩的)’으로 들리나 생면부지의 사람에게는 구체성이 떨어지고 답답증을 유발시킨다. 이는 이현우의 팬이 오랜 동안 서서히 늘어나는 특징과 무관치 않다.
이현우의 말하기를 ‘족보’로 따지자면 ‘이종환(라디오 DJ)’ 계보에 속한다. 느리고 떠듬거리지만 낮고 굵직한 목소리로 성의있고 진실된 느낌을 준다. 능숙한 솜씨(?)로 어눌하게 말하는 것. 매끄럽고 정확한 표현이 각광받은 현실에서 역(逆)이미지의 충격을 준다. 이런 말하기는 ‘잘난 체 하지 않는’ 느낌을 준다. 정말 어눌한 말투를 유머로 승화시켜 자신을 낮춰보게 만드는 코미디언 자니윤의 방식과는 다소 다르다.
‘수요예술무대’ 진행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이현우는 함께 진행하는 피아니스트 김광민의 눈에서 자기 눈을 거의 떼지 않는다. 카메라를 쳐다보기보다 대화 상대와의 자연스러운 아이 콘택트(eye contact)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 공적(公的) 행위인 방송 프로그램 진행이지만 이현우에게는 개인적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 음성의 비밀
다수가 이현우의 목소리 높이를 ‘저음(低音)’으로 여기나, 전문가들은 ‘중음(中音) 중에서도 중음’으로 단정했다. 전문가들은 “이현우의 목소리는 낮은 톤이 아니면서도 ‘나지막이’ 다가와 편안한 느낌을 준다”고 분석했다. 그 이유는 뭘까. 비결은 ‘음량(音量·목소리 크기)’ 조절이다.
이현우는 음량이 풍부한 편이나 그 음량의 4분의 1 가량만 사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음량이 절제된 목소리는 개인적이고 정감을 준다. 일본 NHK의 아나운서 스즈키 겐지가 주장한 ‘반(半) 음성설’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기 음량의 50%로 말하지만 25%로 음량을 낮추면 듣는 이에게 가장 설득력과 친근감이 있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이현우가 여러 사람을 향해 말해도 시청자는 ‘자기에게만 말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현우의 목소리는 또 다정다감한 것으로 조사됐다. 목소리가 타인에게 얼마나 다정하고 정감있게 들리는지를 측정하는 장비 ‘목소리 정감 도우미’(Voice Feeling Monitor)를 최근 개발한 숭실대 배명진 교수가 지난달 30일 방송된 SBS 라디오 ‘이현우의 뮤직라이브’ 중 초기 10분의 목소리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이현우의 음성 정감도는 61.2%로 일반인의 평균(50%)를 크게 웃돌았다. 3∼4초의 짧게 목소리를 잘라 분석한 ‘순간 정감도’는 70%를 웃돌기도 했다. 말의 톤에 변화가 많고 리듬(운율)을 타면서 말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는 음절마다 독특한 성대의 떨림으로 리듬의 변화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를 자유롭게 하는 사람”의 경우 ‘나를-자유롭게-하는-사람’이라는 일반적 말하기 방식과 달리 그는 ‘나-를-자유롭-게하는-사람’으로 리듬을 타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현우는 성장기의 일부(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보냈다. 영어를 말하듯 음절마다 혓바닥에 힘을 주면서 말하는 그의 발음 방식은 무미건조한 한국어 발음에 인토네이션과 리듬을 가미했다는 분석도 있다.
▽도움말=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배명진교수(음성통신 전공),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허경호교수(한국스피치커뮤니케이션학회 부회장), 한국언어문화원 김양호원장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