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는 출범 100일을 맞이하는 지금까지 실험정부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경영 능력의 부실은 정부 핵심층의 인적 구성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스템으로 인사한다고 자랑하지만 내용이 부실한 인사시스템은 어디까지나 부실한 시스템일 뿐이다.
▼역행 불가능한 ‘세계화-정보화’▼
참여정부는 출범과 더불어 몇 가지 참신한 인사개혁을 시도했다. 서열파괴와 연령파괴, 그리고 성별파괴가 그것이다. 참여정부의 주력이 지방으로부터 수혈되고, 젊은층으로 대폭 보강되며, 종래의 비주류가 대폭 참여한 것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안정적인 국정운용도, 박진감 넘치는 개혁도 부족했던 이유는 바로 참여정부의 주력이 생각했던 이념과 정책의 방향이 번번이 현실의 좌표와 충돌했기 때문이다. 세계화와 정보화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이며 불가역적(不可逆的)인 현상이다. 이념적 측면에서 이를 수용하고 따라가지 못한다면 국가의 장기비전은 형성될 수 없다. 만약 세계적 추세를 거스르면서 우리 사회 안의 밥그릇 싸움에 집착한다면, 그 시도는 퇴영적이며 참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바로 1년 전 전국의 광장을 가득 메웠던 붉은 물결의 함성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물결은 연말 촛불시위로까지 이어져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광장의 젊은이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것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인들의 축제에서 당당한 주역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촛불시위는 세계화의 진전 속에서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우리의 주체적 존재를 세계의 초강대국인 미국에 알리고 싶어 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세계화의 반대편은 반세계화가 아니라 정체성(identity)이다. 6월의 붉은 함성은 세계화를 향한 적극적 행보였으며, 촛불시위는 그 반대인 정체성의 확인 작업이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 상반된 두 가지 정서가 결합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 변화에 당당하게 참여하는 주체성 있는 나라 만들기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참여정부의 좌절은 이러한 젊은이들의 열망을 채워줄 ‘개혁비전’, 또는 ‘국가 장기비전’을 갖춘 주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을 세계 주역으로 만든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보라. 젊은 비주류 세력이 막부의 권력을 꺾었을 때, 그들은 쇄국을 지향하던 자파(自派) 세력의 이념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개방 개혁으로 새날을 열었으며, 국가 경영의 기본 틀을 짰고, 각 지방으로 찢겨 있던 일본을 하나의 국민으로 통합했다.
한편에서는 지식 자산을 위한 치열한 각축이 벌어지고 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복합적이면서 불확실하게 전개되는 세계적 변화 속에서, 폐쇄적 이념으로 묶인 소수집단이 체계적 프로그램도 없이 개혁의 주체를 맡겠다고 나선다면 그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참여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5년을 위한 개혁안을 열심히 짜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개혁은 안(案)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실천이 중요하며, 일관된 시간표를 갖고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긴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안을 만드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면 정작 개혁을 실천하기 위한 시간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참여했던 문민정부의 경험에 의하면, 출범 후 일년 동안이 개혁의 성공을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또한 선거 이전에 중요한 개혁안의 매듭을 지어야 한다.
▼‘폐쇄적 소수집단’으로는 안돼 ▼
참여정부의 개혁이 성공하려면 세계의 움직임을 가슴 속에 품고 우리의 미래를 그리는 개혁주체의 형성이 시급하다. 현재 주도 세력의 이념과 경험의 폭을 크게 넓히는 물갈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군자는 화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타자를 용납하지 않으면서 부화뇌동한다고 했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주류와 비주류의 구분을 뛰어넘어 국민 통합적 에너지가 개혁의 목표를 향해 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동이불화(同而不和)의 우를 벗어나 화이부동(和而不同) 하는 길이다.
이각범 한국정보통신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