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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먹물제자 쟁이제자들의 "선생님 사랑합니다"

입력 | 2003-06-03 18:22:00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는 메마른 시대에 훈훈한 사제지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대 교수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지낸 임영방씨(74)의 출판 기념회. 서울대 미대와 문리대 미학과 제자들이 주축이 되어 임씨가 10년 세월을 바친 역작 ‘이탈리아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미술’(문학과 지성사) 출판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제자들은 고희를 넘긴 스승이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꽃피게 된 예술사적 배경을 7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저작 안에 담아낸 열정에 큰 박수를 보냈다.

이날 행사는 300여명이 참석하는 등 성황을 이뤘는데 시종일관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따뜻함이 흐르는 웃음의 한마당으로 펼쳐졌다. 사회를 안 보면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협박(?)에 못 이겨 사회를 맡게 되었다는 김민기씨는 ‘기분이 좋아 낮술 한잔했다’며 불콰한 얼굴로 분위기를 돋웠고, 행사 추진위원장 김정헌씨(화가·공주대 교수)는 프랑스제 신발을 신고 양 손을 허리에 얹은 채 어린왕자처럼 나타났던 스승과의 첫 대면을 추억했다.

제자인 시인 황지우씨의 축시 낭독에 이어 제자들이 만든 흉상과 초상화 증정, ‘내가 추억하는 스승’이란 제목의 영상물이 상영되자 장내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스승의 흉상을 만든 임영선 교수(경원대)가 “작업할 때마다 선생님이 갑자기 환영으로 나타나셔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너 이거 정말 나라고 생각하느냐. 정말 너란 놈은 안되겠구나’ 소리를 쳐대는 바람에 등골이 쩌릿쩌릿했다”라고 말하자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행사 진행을 맡았던 주동률 교수(한림대 인문학부)는 “때로 가혹한 충고와 열정적인 배려로 제자들을 대했던 선생님은 언제나 힘 있는 사람들보다는 비주류의 입장에 서서 허세나 위세를 극단적으로 혐오했던 진실한 스승”이라며 “선생님 덕분에 쟁이와 먹물들이 한바탕 모여 신나는 잔치가 되었다”고 말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