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국무총리가 참여정부 100일을 “다소 미흡했다”고 평가한 것은 ‘책임총리’ ‘안정총리’ 역할을 제대로 못했음을 자인한 것이라 하겠다. 국정 경험이 부족한 새 정부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기용된 인물이 ‘행정의 달인’ 고 총리였다. 그러나 그는 행정 각부를 총괄하는 헌법적 권한과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청와대의 개혁 드라이브 속에서 안정적 균형을 제시하는 데도 실패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총리도 열심히 하는데 대통령만 비춘다”며 언론 탓을 했지만 총리가 제 역할을 못한 근본 원인은 바로 청와대에 있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한 교육부와 전교조의 협상에 청와대가 개입한 것을 비롯해 인사와 정책, 이익집단의 갈등까지 청와대가 직접 챙기면서 총리의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다. 화물연대 파업이 시작된 4월 초 고 총리가 건설교통부에 사태 해결에 나설 것을 지시했으나 한 달 뒤 국무회의에서 보고조차 되지 않을 만큼 건교부는 손을 놓고 있었다. 내각이 청와대만 바라보는 상황에서 총리의 위상이 추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울러 고 총리 스스로 국정조정 능력을 발휘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의문이다. 취임 100일이 지난 이제 와서 “일처리 방식 개선을 통해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니 지금까지 뭘 했다는 건가. 제도적 한계도 있었겠지만 고 총리가 청와대의 ‘독점적 참여’ 의지를 눈치 채고 지레 보신적 처신을 한 것은 아닌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뒤늦게나마 고 총리가 “권한 이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 장관 해임 건의도 하겠다”고 했으니 우선 교육계와 국민의 신망을 잃은 윤덕홍 교육부총리에 대해 그 결심을 실천하기 바란다. 무소신 무원칙 무능력으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교육부총리를 해임 건의해 관철한다면 국민은 고 총리가 국정을 장악한 책임총리로 거듭났음을 인정할 것이다. 그때 비로소 고 총리가 계획하는 행정규제 질적 개선, 투명성지수 향상 등 3대정책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