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단체의 다큐멘터리 제작에 예산을 지원한 것은 적절치 못한 처사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싸고 사회적 대립이 계속되고 있는 마당에 국가기관이 나서서 병역거부를 부추긴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병역기피 의식이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에서 인권위의 조치는 병역거부운동단체의 활동에 힘을 실어주는 격이고 결국 국가 징병업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실제로 국방부와 병무청은 “자칫하면 징병제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니 걱정이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특수 사정에서 이는 바로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인권위가 정부의 기본정책 및 국민 대다수 여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국가기관의 틀을 벗어나는 일이다. 특히 남북관계나 국제관계 등 국익과 관련된 사안일 경우에는 현실적 조건들을 감안해 좀 더 신중한 결정을 하는 것이 인권위의 올바른 자세다.
인권위는 그동안 국민 정서와 국익과는 동떨어진 결정이나 언행으로 국정 혼선을 초래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의 대(對)이라크전 지지 입장을 밝히고 파병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에 배치되는 반전(反戰)성명을 채택했고,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파동과 관련해서는 전교조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내렸다. 반면 인권위원장은 인권이 짓밟히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는 “계량화된 자료가 없다”고 말해 이 조직이 막상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엉뚱한 일이나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처럼 인권위가 계속 소모적 논란을 부추기는 것은 국민 전체의 인권을 모욕하는 일이다. 국가기관이 소수의 일방적 의견에 치우쳐 사려 깊지 못한 결정을 하면 국가정책은 실종되고 사회적 갈등도 그만큼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인권위는 시민단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