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전 후원회장인 이기명(李基明)씨의 경기 용인시 땅 매매 및 개발 의혹의 실체는 뭘까. 청와대가 두 차례나 해명에 나섰지만 아직 몇 가지 대목에서는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이씨 등 관련 당사자들이 전면에 나서 해명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
▽베일에 가려진 1차 매수자는 누구=노 대통령이 ‘호의적 거래’를 한 ‘지인(知人)’이라고 밝힌 1차 매수자의 정체가 여전히 풀리지 않은 핵심 의혹이다.
이 인물은 2002년 8월29일부터 올해 2월4일까지 이씨에게 19억원을 건네주면서도 계약서 작성 외엔 토지등기부에 자신의 권리 주장을 위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더구나 그 땅엔 이미 10억원의 근저당(국민은행)과 가등기(김남수씨)까지 설정돼 있는 상태였다.
한 금융 관계자는 “잔금을 치를 때까지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은 것은 돈을 그냥도 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가까운 인물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이 인물은 자신이 계약을 해지했다고 해서 계약금 2억원을 위약금으로 떼였다. 또 돈의 흐름상 아직도 자신이 건넨 19억원 중 나머지 17억원을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배경’이 든든한 이씨의 땅에 대규모 실버타운 사업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재력가(건설회사나 사업시행자 등)가 사업을 따내기 위해 선수금으로 돈을 건넸을 가능성도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또 아예 가공의 인물이거나 노 대통령의 주변인물로 실제 땅 거래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수천의 보증채무(18억8500만원) 변제를 위해 땅 매매라는 형식을 거쳐 이씨에게 돈을 건넸을 수도 있다는 의혹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사적인 문제’라 공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이런 오해를 풀려면 떳떳이 밝혀야 한다는 게 일반인의 시각이다.
▽자연녹지로의 용도변경에 쏠린 의혹=이씨 형제들의 땅 10만여평이 농림지에서 자연녹지로 용도변경된 데 대한 의혹 제기(본보 2일자 A1면)에 대해 용인시는 “보전녹지에도 사회복지시설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용인시 김남형 도시국장은 “사회복지시설은 도시계획시설 결정을 거치면 자연녹지와 보전녹지 모두 가능하기 때문에 자연녹지로 용도변경해 준 데는 의혹이 없다”고 설명했다. 용인시는 2일 한나라당 진상조사단이 시청을 방문했을 때도 같은 답변을 했다.
그러나 도시계획 전문가들과 다른 자치단체 담당 공무원들의 설명에 따르면 사실관계가 다르다.
옛 도시계획법이나 현행 국토계획법상 도시계획시설은 용도지역을 불문하고 들어서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도로나 철도 등 의무시설과 달리 임의시설인 사회복지시설의 경우 자연녹지가 아닌 보전녹지에서 도시계획시설 결정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개발을 전제로 한 자연녹지와 보존을 위해 지정한 보전녹지는 건축 가능 면적 등 도시계획조례가 규제하는 조항들에서 차이가 나 보전녹지는 사실상 도시계획시설 결정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특히 도시계획시설 결정을 위해선 도시계획위원회를 거쳐야 하는데 자연녹지와 보전녹지는 용도지정 목적이 명확히 다르기 때문에 심의과정에서 전혀 다른 차원으로 다뤄진다는 것.
용인시는 이 땅이 자연녹지로 지정된 이유를 담은 도시관리계획 관련 서류의 공개를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어 의혹을 더하고 있다.
한나라당 김문수(金文洙) 의원은 3일 이 땅과 관련해 △수도와 전기도 없는 곳에 농가주택을 세운 이유 △이씨와 그 형제의 땅이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됐다가 해제되면서 큰 이익을 챙기게 된 경위 △이씨의 땅만이 자연녹지지구로 지정된 이유 등에 대한 추가 의혹을 제기했다.
▽소명산업개발의 실체는 무엇=1100억원대의 실버타운 건설 사업을 추진할 소명의 실체는 관련자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투명하다.
등기부에 나타난 대표이사 정모씨(50)와 이사 윤모씨(22·여), 감사 이모씨(37·여) 외에 회장 윤동혁(尹東赫·42)씨와 전무 박상훈(朴尙勳·43)씨가 새로 등장해 약간의 실체가 드러나긴 했다.
그러나 전무 박씨는 “이기명씨는 상관이 없고 소명의 대주주는 따로 있지만 누구인지 밝힐 수 없다”고 말해 뒤에는 제3의 재력가가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특히 소명측은 1차 매수자가 계약을 파기(2월5일 이후)하기 전인 1월 말에 이미 농협측에 대출을 문의한 것으로 드러나 이 부분도 의문점이다.
이에 대해 회장 윤씨는 “12월경 이기명씨로부터 1차 매수자가 사업성이 없다며 계약을 파기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는 사업을 본격 추진하게 됐다”고 3일 설명했다.
그러나 그때 계약을 파기할 의사가 있던 1차 매수자가 왜 올해 2월4일에 잔금 13억5000만원 중 4억원을 건넸는지가 의문이다. 4억원은 장수천의 남은 보증채무(3억8500만원)를 갚는 데 필요한 액수다.
용인=남경현기자 bibulus@donga.com
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