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 에쵸티가 누구야?’
중증 정신지체 장애인들로 구성된 5인조 댄스 그룹이 유명연예인 못지않은 열기를 전국에 뿌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공연(춤과 노래)실력은 프로급에 못미친다. 또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고급 승합차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러나 18일간 전국순회공연에 나서면서 편한 길 대신 자전거 일주를 선택하는 등 시종일관 장애한계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 장애인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다.
충북 제천시 흑석동 정신지체 장애인 시설인 ‘세하의 집(원장 박경이)’ 원생인 최영교(23) 신광식(〃) 김종식(22) 신범석(21) 최태범군(17) 등 5명으로 구성된 ‘세하 에쵸티(HOT)’가 주인공. 이들은 지난달 31일 오전 11시 제천을 출발, 1일 경북 안동시 애명복지촌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2일에는 영천시 영천팔레스에서 화려한 율동을 선보이는 등 18일까지 전국 14개 시(市)의 장애인시설을 찾아 공연을 펼친다.
멤버들 모두 정신지체 1, 2, 3급의 중증 장애인. 따라서 안동∼포항∼경주∼울주∼김해∼거제∼여수∼광주∼전주∼익산∼군산∼보령∼서산∼여주∼제천 등 총 1700여km를 자전거로 도는 것 자체가 ‘힘든 도전’이다. 하지만 그동안 갈고 닦은 솜씨를 비슷한 처지의 장애인들에게 보이겠다는 생각에 모두들 자신감에 차있다. 공연을 본 복지시설 원생들은 객석에 머물지 않고 함께 몸을 흔들며 장애를 털어내는 모습이다.
2일 오후 이들의 공연을 지켜본 정신지체장애인 시설 영천팔레스(원장 정국섭) 원생 120여명은 1시간여 동안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김병국 운영과장은 “평소 이들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직접 보니 춤실력이 뛰어났다”며 “공연을 본 원생들 사이에서 ‘우리들도 춤동아리를 만들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세하 에쵸티’는 1998년 최고의 인기를 모은 댄스그룹 ‘HOT’를 본따 만들었다. 이 복지시설로 봉사활동에 나선 청소년들이 춤공연이 계기가 됐다. 영어발음이 서투른 탓에 ‘에쵸티’라고 이름을 붙였다.
박 원장은 “동료 원생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일삼아 ‘요주의(?)’인물이었던 멤버들이 춤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피나는 노력과 연습을 했지만 솜씨를 발휘할 무대는 마땅치 않았다. ‘장애인들이 무슨 춤을 추겠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적지 않았다. 동네 경로당을 찾아가 공연을 시작한 이들은 점차 뛰어난 춤실력이 소문이 나면서 각종 행사에 초청됐고 2001년 11월 광주에서 열린 전국청소년댄스 경연대회에서는 당당히 3위를 차지했다.
각종 대회에서 잇따라 입상해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 초청 문의가 쇄도했다. 박 원장과 단원들은 고민 끝에 순회공연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석달이 넘게 강도 높은 체력훈련과 춤 연습에 열중했다.
차를 타지 않고 자전거로 이동하는 것은 장애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정신을 심어주고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전을 캠패인하기 위한 것. 이동 중 사고를 막기 위해 제천시 자전거연합회 전무인 류관우씨(42)가 탐험대장을, 노정섭씨(42)가 행정대장을 자원했으며 ‘세하의 집’ 직원과 의료진도 동행했다.
류 대장은 “장애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돌며 공연하는 것이 처음인데다 여정도 힘들어 걱정이 많이 된다”며 “이번 도전으로 장애인들이 희망과 자신감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천=장기우기자 straw8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