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4일로 출범 100일을 맞는다. 노 정권보다 불과 몇 개월 앞서 좌파정권이 들어선 독일과 브라질은 어떨까. 두 나라는 비슷한 시기에 출범했지만 여러 면에서 대비되고 있다. 독일 사민당 정권은 집권초기 인기 위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했으나 경제적인 난관에 봉착해 지지도가 급락했다. 반면 브라질 노동자당 정권은 지지층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소신 있는 정책을 펼쳐 경제안정을 이뤄내면서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
지난해 가을 전 세계는 브라질이 약 2500억달러 규모의 공공 채무를 못 갚겠다고 나올까봐 전전긍긍했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달 29일 “아르헨티나에 이어 남미발(發)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시키던 브라질이 개발도상국 경기회복을 이끄는 견인차가 됐다”며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58)의 소신 있는 정책을 평가했다.
룰라 대통령을 영 못 미더워하던 서방 언론들은 이제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취임 6개월째에 접어든 룰라 정권에 대한 국민 지지도도 80%에 달한다. 개혁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집권한 에콰도르 아르헨티나 등 남미의 좌파 대통령들은 좋든 싫든 룰라 대통령과 비교를 당할 만큼 ‘대표 사례’가 됐다.
공장 노동자 출신으로 강성 노조를 이끌던 그가 집권 이후에는 좌파 노선만을 고집하거나 인기영합적인 선심 정책을 남발하지 않고 ‘제3의 길’을 실험하고 있다.
그는 12세에 구두닦이를 시작했고 금속공장에서 밤샘 작업을 하다가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첫 부인도 입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출산 도중에 사망했다. 1966년부터 노조 활동을 시작해 철강 노조위원장을 역임하며 70년대 금속노조 파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86년 연방하원에 진출했으며 4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돼 올해 1월 취임했다.
룰라 대통령의 성과는 단연 경제 분야에서 찾을 수 있다.
취임 이후 기업인과 국제 금융통을 주요 경제 관료에 포진시켰다. 중앙은행장 엔 리케는 다국적 금융기업인 브라질 보스턴 은행장 출신이다. 그는 10년 만에 은행 자산을 1억달러에서 30억달러로 늘려 96년 보스턴 은행 사상 첫 외국인 총재가 된 인물. 루이스 푸를란 산업장관은 브라질 최대 경제단체인 상파울루 공업연맹 부회장을 지냈다.
인플레이션과 환율을 잡기 위해 고금리 정책과 긴축 정책을 강하게 추진했다. 환율이 안정을 찾자 대외 채무 이자가 크게 줄었고, 금융 시장에서 신뢰를 얻어 브라질 주가지수인 보베스파 지수도 지난해 10월 8,370 선에서 지난달에는 13,000 선으로 수직상승했다.
물론 반발도 있다. 기업인들은 이자율이 26.5%로 터무니없이 높아 경기 하강을 초래한다며 항의한다. 룰라 대통령의 산파역할을 한 집권 노동자당 내에서도 임금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연금 개혁과 시장친화적인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정부 각료들은 대폭적인 예산 삭감이 철회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브라질의 금융 안정은 현실을 치밀하게 분석해 원칙을 세우고, 일단 원칙이 세워진 후에는 우선순위에 따라 밀고 나가는 룰라 대통령의 소신이 빛을 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고금리 정책은 인플레를 완전히 잡은 후 내릴 수 있고, 정부 지출도 정부 재정이 균형을 이룬 후에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단호히 설명한다. 올 초 단행한 46억달러의 예산 삭감에 대해서도 “전 정권이 남겨놓은 비용도 만만치 않고 일부 예산은 거짓으로 조성됐다”며 얼렁뚱땅 물러설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각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이 얽혀있는 가운데서도 원칙을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은 사회적 합의에서 나온다.
룰라 대통령은 존경하는 지도자로 스페인의 펠리페 곤살레스 전 총리를 꼽는다. 프랑코 독재가 끝난 후 스페인의 사회 통합을 위해 1977년 초당적인 협약을 제안했고 1982년 총리가 된 이후에도 이를 지속해 나갔다. 그가 집권한 14년간 스페인은 말 그대로 ‘도약’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룰라 대통령도 “사람들은 법 이상으로 상호간 합의를 중시한다”고 강조한다. 때문에 어느 대통령도 감히 제대로 손을 못 댔던 연금과 세제 개혁을 룰라 대통령이 성공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크다. 연금과 세제 문제는 룰라 대통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을 포함해 여러 세력들의 복잡한 반발이 얽혀 있어 금융시장 안정보다도 더 주목되는 개혁의 시금석이다.
지난주 룰라 대통령은 중도파 브라질 민주운동당(PMDB)의 연정 참여를 성공시켰다. 이로써 연금제도 개혁을 위해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하게 됐다. 또 하원 법사위원회가 지난달 29일 노동자당이 발의한 법안을 통과시켜 세제개혁 법안도 첫 관문을 넘는 등 한 걸음씩 개혁이 진전되고 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슈뢰더 독일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59)는 여러모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비슷하다. 우선 지난해 선거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 것부터 똑같다.
총선을 두 달 앞둔 7월까지만 해도 슈뢰더 총리의 재집권은 불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좌파인 슈뢰더 총리의 사민당(SPD)은 35% 안팎의 지지율로 우파인 기민·기사연합(CDU-CSU)의 40%에 비해 5%나 뒤졌었다.
그러나 8월 독일에 ‘100년 만의 대홍수’가 밀어닥쳤다. 슈뢰더 총리는 장화를 신고 직접 수해 현장에 뛰어들었다. 발 빠르게 긴급재정을 편성하는 등 국가 위기에 강한 지도자의 면모를 보였다.
이라크전쟁도 슈뢰더를 도왔다. 슈뢰더 총리는 선거 막판에 ‘미국의 이라크전쟁 추진 반대’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의 반전은 좌파, 반미는 민족주의 성향의 우파 지지표를 늘렸다. 그는 TV 토론에서도 소탈한 화법으로 딱딱한 이미지의 집안 좋은 변호사 출신 에드문트 슈토이버 기민·기사연합 후보에게 판정승을 거뒀다.
그 결과 총선 득표율은 사민당과 기민·기사연합이 38.5%로 같았다. 그러나 사민당의 연정 파트너인 녹색당이 선전해 결국 슈뢰더가 정권을 거머쥐었다.
편모 슬하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슈뢰더 총리는 성장과정도 노 대통령과 비슷하다. 그는 17세부터 상점 견습생으로 일하며 야간학교에 다녀 괴팅겐 법대에 입학했으며 변호사 자격을 따낸 뒤 정치에 입문했다.
이제 슈뢰더의 재집권 8개월여. 성적표는 어떨까.
시사 주간지 슈테른과 민영방송 RTL은 지난달 27일 집권 사민당의 지지율이 25%로 사상 최저치로 추락했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30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독일 국민의 51%는 총선을 다시 치러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고 답했다.
앞서 사민당은 2월 실시된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했다. 슈뢰더 총리는 자신의 지역구이자 사민당의 아성인 니더작센주 선거에서도 패배했다. 사민당 지방 선거 출마자들은 슈뢰더 총리의 지원 유세가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며 거부하기도 했다.
슈뢰더가 이처럼 한심한 신세가 된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독일 경제가 통일 이후 최악이기 때문. 독일이 실업자는 450만명(실업률 11%선)을 넘어서며 통독 이후 최고치를 연속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경제성장도 3년째 제자리에 머물면서 ‘라인강의 기적’은 ‘독일병’이란 말로 바뀌었다. ‘유럽 경제의 기관차’였던 독일은 이제 ‘유럽 경제의 거대한 짐’으로 전락했다. 왜 이 지경까지 됐을까.
독일 경제의 하락은 사회보장비용 부담과 과도한 노동권 보호 때문. 비즈니스위크는 구조 조정과 계약직 고용을 불가능하게 하는 해고방지법 등 노동보호법과 기업의 사회보장비용 등을 독일 경제 추락의 주범으로 꼽았다.
연금과 실업수당은 평균임금의 70%나 된다. 실업자들은 넉넉한 실업수당을 받으며 세금을 내지 않는 ‘무자료’ 아르바이트에 뛰어들고 있다. 결국 세입은 적어지는 대신 사회보장비용 증가로 재정적자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개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슈뢰더 집권 1기 때부터 있었다. 하지만 노조를 최대 지지기반으로 하는 사민당은 노조의 반발을 의식해 노동법과 사회보장 문제를 손대지 못했다.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견디지 못한 슈뢰더 총리는 올 들어 ‘어젠다 2010’이라는 경제 사회 개혁안을 내놓았다. △해고요건 완화 등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실업수당과 건강연금 보험 등 각종 사회복지비용 축소 △현행 65세에서 67세로 정년연장 등이 그 내용.
사민당의 전통적인 노선을 수정하는 이 개혁안은 즉각 노조와 당내 반발을 불러왔다. 야당측도 “집권 1기에도 못한 일이다. 자신 없으면 정권을 넘기라”며 슈뢰더를 압박하고 있다. 이번에는 슈뢰더 총리도 “‘어젠다 2010’이 통과되지 않으면 사임하겠다”고 배수진을 치고 있다. 사면초가에 빠진 그의 마지막 승부수가 다시 통할 수 있을까.
주독일 한국대사관 김영희(金英姬) 공사참사관은 “‘나만 빼고 모두 개혁하라’는 식의 독일 국민 정서가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며 “독일 정부는 그때그때 국민의 인기에 영합하기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으로 승부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룰라 대통령 약력▼
-1945년 브라질 북동부 페르남부쿠주(州)에서 출생(12세부터 구두닦이 시작. 14세 때 금속공장에 취직)
-1966년 노조에 가입
-1975년 브라질 철강노조 위원장 당선
-1980년 노동자당 결성
-1986년 연방 하원 진출
-1989년, 94년, 98년 대선 출마.
-2002년 대통령 당선
-2003년 1월 대통령 취임
▼슈뢰더 총리 약력▼
-1944년 독일 북부 로어 색소니주 출생(부친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 모친은 청소부)
-1958 상점 견습생(괴팅겐 법대에서 수학)
-1976 변호사 자격증 취득
-1978 사민당의 청년조직 대표로 활동
-1980 분데스타그(독일 하원) 의원으로 당선
-1990 로어 색소니 주지사 당선
-1998 사민당 후보로 총리 당선
-2002 사민당 후보로 재집권 및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