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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話 국민의 정부]2부 ④가짜 진승현 리스트

입력 | 2003-06-04 18:01:00

김은성이 2000년 4월 27일 청와대에서 DJ로부터 2차장 임명장을 받고 있다.-이동관기자


MCI코리아 대표 진승현(陳承鉉)의 정관계 로비 및 거액 불법대출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00년 11월 어느 날.

김은성(金銀星) 국가정보원 2차장은 대검의 한 간부를 만나 정관계 인사 수십명의 이름이 적힌 종이쪽지 한 장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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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뭡니까.”

“진승현에게서 돈을 받은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정말입니까.”

대검 간부의 질문에 즉답을 피한 채 김은성은 “(그 사람들을) 수사할 수 있겠느냐”며 미묘한 질문을 거꾸로 던졌다.

명단에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장남 홍일(弘一)씨와 차남 홍업(弘業)씨, 대통령비서실장 등 실제로는 진씨의 돈을 받은 일이 없거나 이 사건과 전혀 무관한 사람이 여러명 올라 있었다. 가짜 ‘진승현 리스트’였던 것이다.

당시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의 설명.

“김은성은 평소 친분이 있던 검찰 수뇌부 등에게 가짜 리스트를 보여주며 ‘어떻게 책임지려고 불씨를 만드느냐. 이 리스트를 건드리면 정권의 앞날은 장담할 수 없다’며 압박을 가했습니다. 부담을 줘서 수사를 막으려고 했던 것이죠. 또 여권 핵심 관계자들에게도 이 리스트를 보여주며 사실상 협박을 가했습니다.”

국내 정보를 총괄하는 국정원 2차장이 검찰 수사 중단을 목적으로 가짜 리스트까지 동원해 검찰과 여권 핵심부를 압박했던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진승현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같은 전말은 1년 뒤인 2001년 12월24일 김은성이 진승현의 도피를 방조한 혐의로 구속된 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

김은성은 2000년 5월 진승현에게서 금융감독원의 한스종합금융에 대한 조사와 리젠트증권 주가조작 등에 대한 조사 무마 청탁조로 5000만원을 받았다. 이후 ‘진승현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0년 9월 초부터 김은성은 진승현의 도피를 돕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서울지검 특수1부는 진승현을 검거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으나 11월 말까지 검거하지 못했다.

다음은 김은성에 대한 검찰 공소장 내용.

“진승현은 검찰 소환을 거부하고 도피했는데 김은성은 (진승현이 구속될 경우) 자신과 진승현의 유착 관계가 드러날 것을 염려한 나머지 검찰에 출입하던 국정원 연락관에게 진승현에 대한 수사 진행 상황을 파악해 수시로 보고하도록 했다.”

김은성은 2000년 9월 말 도피 중이던 진승현을 만나 국정원 연락관을 통해 파악한 검찰 수사 상황을 알려준 뒤 10월 초에는 진승현의 은신처였던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원룸아파트까지 찾아가 “김재환(金在桓·전 MCI코리아 회장)이 밖에서 많은 힘을 쓰고 있으니 조금만 참아라”고 격려하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재환은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 간부 출신으로 김은성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2000년 7월 김은성의 소개로 진승현이 오너인 MCI코리아의 회장에 영입됐다.

문제는 당시 국정원에서도 이미 김은성의 가짜 리스트와 관련된 구체적인 정보를 다량 수집하고 있었는데도 권력 실세의 비호를 받고 있던 김은성을 어떻게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정원 고위 간부 L씨는 2001년 초 김은성의 ‘진승현 구하기’를 둘러싼 행적을 근거로 국정원 수뇌부에 김은성에 대한 징계를 강력하게 건의했으나 김은성은 이 사실을 알고 오히려 L씨에 대해 반격을 펼쳤다.

당시 국정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여권 관계자의 설명.

“김은성의 입장에서 L씨는 국정원 2차장 자리를 넘보는 인물이었습니다. 자리를 놓고 한판 사투를 벌인 것이지요. 이 와중에 신건(辛建)씨가 2001년 3월 국정원장에 취임했습니다. 신 원장은 김은성을 어떤 식으로든지 처리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신건은 김은성을 정리하지 못했다. DJ정권 핵심부의 견제가 심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의 증언.

“여권 핵심부의 뜻은 신 원장의 생각과 정반대였습니다. ‘김은성은 일을 잘 하는 사람이니까 남겨둬야 한다’는 메시지가 청와대에서 신 원장에게 전달됐던 것이죠. 오히려 일부 인사는 ‘L씨의 사표를 받아야 한다’고 신 원장에게 강권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 원장은 결국 맞설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뒤 L씨를 설득해 모 지방 지부장으로 보냈습니다.”

이처럼 국정원장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막강한 위세를 떨치던 김은성은 결국 검찰에 구속된다. 바로 언론의 끈질긴 의혹 제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구속에 이르는 과정도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김은성의 수사중단 압력에도 불구하고 2000년 12월 진승현이 구속되자 각 언론은 김은성이 검찰 수뇌부를 상대로 진승현의 구명운동을 벌였으며 여야 정치인들이 진승현에게서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거듭 제기했다.

그러나 검찰은 당시 언론의 의혹 제기를 철저히 규명하지 못한 채 12월 말 진승현의 종금사 불법대출과 주가조작 등에 관여한 20여명을 구속기소하는 선에서 일단 사건을 마무리했다.

당시 김은성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재환씨가 진승현씨를 사윗감으로 소개해 검찰 간부에게 진씨가 어떤 사람인지 문의한 적은 있지만 진씨를 위해 구명운동을 하거나 진씨를 만난 적은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러나 2001년 11월 중순, ‘진승현 게이트’와 관련해 로비스트였던 김재환이 국정원 직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의혹이 언론에 보도된 것을 계기로 각 신문과 방송은 김은성과 정성홍(丁聖弘) 전 국정원 경제과장, 민주당 김방림(金芳林) 의원 등의 연루 의혹을 또다시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이 2000년 12월 김재환에게서 “김방림 의원에게 진씨의 구명 청탁과 함께 5000만원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사건은 다시 재수사의 급류를 타게 됐다.

결국 언론에 떼밀려 재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2001년 11월30일 진승현에게서 금감원 조사 무마 등의 청탁과 함께 1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정성홍을 구속했고 12월24일 마침내 김은성을 구속했다.

수사에 관여했던 한 검사의 설명.

“김은성을 목표로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고비가 있었습니다. 단적인 예가 국정원 내의 김은성 라인이 수사에 혼선을 초래하기 위해 검찰 주변과 정치권에 진승현씨의 돈을 받았다는 의원 여러 명을 실명으로 거론한 루머를 퍼뜨린 것이었죠. 수사 초점을 흐리게 하기 위한 공작의 일환이었죠.”

김은성을 둘러싸고 그가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는 중에도 “빨리 가석방시켜 주지 않으면 재직 중 수집한 비리관련 정보를 폭로하겠다고 여권 핵심부를 협박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아무튼 김은성은 형기 만료를 두달여 앞둔 10월28일 석연치 않은 과정으로 전격 가석방됐다.

이후 김은성은 지난해 말 본사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진승현은 국정원이 전체적으로 비호한 것이다. 내가 혼자 한 게 아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말하겠다. 나는 진승현에게서 돈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신광옥 '진승현 게이트' 연루 결국 구속▼

‘진승현(陳承鉉) 게이트’ 수사가 진행되던 2001년 12월11일 오전 5시반경.

K 검사장의 집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에서 신광옥(辛光玉) 법무부 차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진승현 얼굴도 몰라. 그런데 신문에 왜 이런 기사가 나왔나.”

이날 모 조간신문 1면에 ‘신광옥 법무부 차관 민정수석 때 진승현씨에게서 1억 받았다’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된 것을 두고 하는 얘기였다.

K 검사장은 “지난해부터 그런 소문이 많이 났는데, 혹시 식당 같은 곳에서라도 (진승현을) 우연히 만난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신광옥은 “어쨌든 나는 진승현 얼굴도 모르니 그런 줄 알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신광옥의 부인과 달리 당시 서울지검 특수1부는 이에 앞서 11월 말 신광옥이 진승현 게이트와 관련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상태였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의 설명.

“검찰이 입수한 것은 신광옥이 최택곤(崔澤坤) 민주당 교육특위 부위원장을 통해 진씨를 만나고 진씨에게 변호사를 소개했다는 첩보였습니다. 그래서 진씨를 추궁한 끝에 12월4일 ‘최씨에게 (신광옥에 대한 로비 자금으로) 1억여원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 곧바로 최씨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한 겁니다. 다만 신광옥에게 돈이 전달됐는지는 불확실한 상황이었는데 일주일쯤 뒤 기사가 나온 것입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정작 검찰 내부에서 신광옥의 수뢰여부 못지않게 누가 이를 언론에 흘렸을까가 더 큰 관심사였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 내에서는 “모 검찰 고위 간부가 언론에 신광옥의 수뢰 의혹을 흘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신광옥과 차기 총장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던 상대측에서 신광옥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해 언론을 이용했다는 추측성 분석이었다.

한 검사의 설명.

“2001년 5월 신승남(愼承男) 대검 차장이 검찰총장이 된 뒤 신광옥 등 고위 간부 3명이 차기 총장 자리를 놓고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쟁 상대의 약점을 요로를 통해 정권 핵심부에 전달하거나 언론에 흘리는 식으로 상대 ‘끌어내리기’가 진행됐습니다. 심지어 신 총장을 조기 퇴진시키기 위해 신 총장의 약점을 은밀히 유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신광옥은 최택곤으로부터 1800만원을 받은 혐의로 2001년 12월24일 구속됐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는 “진승현을 한번 만나 점심을 먹었으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 말을 바꾸었다.

▼특별취재팀▼

▽팀장=이동관 정치부 차장

▽정치부=윤승모 차장급기자 박성원 최영해 김영식 부형권 이승헌기자

▽경제부=반병희 차장 홍찬선 김동원 박중현 김두영기자

▽사회부=하종대 이명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