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 군사위원회가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정보의 신빙성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청문회를 열기로 결정한 가운데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사진)도 이라크전 후(後)폭풍을 맞기 시작했다.
영국 하원 외교위원회는 총리실이 정보기관의 WMD 보고서 작성에 개입, 사실을 왜곡했다는 주장에 대해 청문회를 벌이기로 3일 결정했다고 BBC가 전했다. 이는 여당인 노동당 피터 킬포일 하원의원이 이라크 WMD 보유 주장의 근거를 밝히라고 발의, 50여명의 의원이 찬성함으로써 결정됐다.
외교위는 6월 중 청문회를 열고 다음달 보고서를 낼 계획이다.
이와 관련, 지난해 9월 블레어 총리가 이라크의 WMD 보유 증거라며 의회에서 발표한 영국 합동정보위원회(JIC)의 보고서 내용은 그의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 적절히 삭제된 것이라고 더 타임스가 1일 전했다.
원래 JIC 보고서의 결론에는 “이라크가 WMD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나와 있었지만 앨러스테어 캠벨 총리공보수석 등 총리실 간부들이 존 스칼렛 JIC 위원장과 협상해 결론을 삭제해버렸다는 것이다.
블레어 총리에 대한 하원 내 비판 세력은 이라크가 45분 내에 생화학무기를 실전배치할 수 있다는 주장 등은 과장이라며 블레어 총리는 국민들을 ‘부당한 전쟁’으로 끌고 갔다면서 JIC 보고서 전문을 공개하라고 비난하고 있다.
앞서 블레어 총리의 참전 결정에 반대해 내각을 사임했던 로빈 쿡 전 노동당 원내총무도 지난달 28일 “블레어 총리는 있지도 않은 이라크의 위협을 과장했다”며 “의회와 국민 앞에 ‘중대한 과실’을 범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블레어 총리의 신뢰성은 상당히 손상받은 것으로 보인다. 더 타임스 일요판은 1일 여론조사 결과 이라크의 WMD 위협에 대해 블레어 총리가 거짓말하는 등 ‘국민들을 오도했다’는 응답이 70%에 달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블레어 총리는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에 참석 중이던 2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라크가 즉시 쓸 수 있는 WMD를 보유했다는 주장에 대해 100% 찬성한다”며 “총리실이 정보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주장은 ‘완전 거짓’”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 과학자 등에 대한) 인터뷰 자료 등을 포함해 WMD 증거들을 취합 중이며 몇 달 내에 이를 공개할 것”이라며 “인내심을 가지고 증거 추적 작업을 지켜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