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치머만의 연주회가 열린 4일 저녁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예정 시간이 20분이나 지나도록 연주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관객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7시50분 무대에 오른 치머만은 연주에 앞서 “녹음 시설 때문에 공연이 지연돼 미안하다”는 사과를 전했다.
사정은 이랬다. 치머만은 공연 전 장내에 설치돼 있는 마이크를 모두 치워달라고 예술의 전당측에 부탁했다.
예술의 전당은 통상 공연되는 모든 연주를 녹음해 자료로 보관하지만, 연주자가 원치 않을 경우 녹음을 하지 않는다. 예술의 전당은 “녹음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치머만이 계속 마이크를 없애줄 것을 고집하자 그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시작이 늦어진 것.
그는 첫 곡인 브람스의 ‘6개의 소품 Op.118’ 연주 도중 관객을 향해 다시 한번 녹음시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예술의 전당의 한 관계자는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마이크를 치워달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도 “녹음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대부분 이해를 하는데 이번 같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의 연주에 대해서도 관객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클래식 전문 인터넷 사이트 ‘고클래식’ 게시판에는 “곡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자신만의 해석이 어우러진 명연주로 ‘명불허전’을 새삼 느끼게 했다”는 호평과 “무성의하기 이를 데 없었다”는 악평이 분분했다.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3번에서는 “빨리 치고 집에 가고 싶어 하는 듯했다”는 관객도 있었다.
매끄럽지 못한 진행은 공연이 끝나도 계속됐다. 관객들은 사인회를 기다리며 콘서트홀 로비에 길게 줄을 섰지만 “연주자 사정상 사인회는 없다”는 장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상당수의 팬들이 발길을 돌렸을 즈음 느닷없이 사인회가 시작돼 관객들은 마지막까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중국 등에서는 실제로 공연장 실황을 녹음해 해적판으로 판매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빚어진다. 치머만이 우리나라를 중국 정도로 오해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한 음악팬은 “피아노를 가지고 다닐 정도로 섬세한 연주자라더니 사소한 데까지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