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신세기(アジア新世紀)’ 시리즈/아오키 타모츠(靑木保) 외 편저/이와나미(岩波)서점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 ‘아시아’는 대략 두 가지 관점에서 논의돼 왔다. 하나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탈아론(脫亞論)’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시아는 문명의 진보라는 측면에서 ‘뒤떨어진’ 지역이라는 관점이다. 이런 입장에서는 일본을 ‘아시아’보다 서양에 더 가까운 사회로 생각했고, 그 결과 아시아는 모멸과 차디찬 비웃음의 대상일 뿐이었다.
다른 하나는 일본을 ‘아시아’의 일원으로 간주하고 아시아와의 연대를 도모함으로써 서양적 근대를 뛰어 넘으려는 것이다. 언뜻 보면 후자가 전자보다 아시아에 대해 훨씬 친화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리 높여 외쳐댔던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슬로건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아시아의 편에 서서 서양을 비판한다고 해도 ‘아시아주의’의 입장에 섰던 많은 일본의 지식인들은 아시아 중에서도 자신들이 보고 싶은 ‘아시아’상만을 보았고, 오히려 현실의 아시아에 대해서는 지극히 일본적인 ‘아시아 이데올로기’를 강요했다. 그렇다면 왜 이 같은 인식이 생겼을까? 그 이유는 ‘서양-아시아’, ‘근대-반근대’라는 이항대립으로만 ‘아시아’를 파악하려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실의 다양한 아시아, 아무리 보아도 하나의 틀로는 수습되지 않는 산란(散亂)한 아시아를 무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고 다이내믹한 ‘아시아’를 파악하려는 시도로 나오고 있는 것이 ‘아시아의 신세기’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공간’, ‘역사’, ‘아이덴티티’, ‘행복’, ‘시장’, ‘미디어’, ‘파워’, ‘아시아 신세기의 구상’이라는 테마별로 이뤄진 전 8권의 논문집이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초영역적’이라는 데 있다.
첫째로 각권의 테마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리즈의 편집 자체가 기성 학문 영역의 틀을 벗어나 있다. 당연히 편집위원들도 인류학 정치학 사회학 사상사 영화론 등 폭넓은 영역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이 같은 편집 방침을 취한 배경에는 경직된 학문의 틀로는 다양한 아시아의 현실을 파악할 수 없다는 깊은 반성이 있었던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둘째는 논하고 있는 대상의 ‘초영역성’이다. 이 시리즈의 서문에서는 “전통과 자연의 보고로서의 아시아라는 이미지는 일변했고, 지금의 아시아는 마천루의 번영과 슬럼이 동거하는 세계의 풍요로움과 비참함의 도가니로 변해 가고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트랜스아시아’라고 할 수 있는 ‘국경을 넘는 자율적 움직임’이다. 예컨대 이 시리즈의 제3권 ‘아이덴티티’에서는, 국민국가에 회수되지 않은 새로운 아이덴티티의 모습이 인종, 젠더, 디아스포라, 잡종성 등의 관점에서 모색되고 있다. 특히 재일조선인, 오키나와의 아메라지언(미국인 병사와 오키나와 여성 사이의 혼혈아), 팔레스타인 여성 등 경계(境界)의 존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시리즈는 아직 완간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권 한 권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아시아 상’을 떠오르게 해 준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 책은 일본의 지식인 사회에 큰 충격을 줄 것이 틀림없다.
이연숙 히토쓰바시대교수·언어학 ys.lee@srv.cc.hit-u.ac.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