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공무원 인사에서 부하나 동료 직원들의 평가를 반영하는 ‘다면평가’를 적극 활용하면서 공직사회의 상하관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간부들이 다면평가를 의식해 부하들의 눈치를 살피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부하에게 잘 보이자”=새 정부 출범 전에는 정부 부처 간부들이 부하들을 큰 소리로 야단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으나 요즘은 이런 풍경이 거의 사라졌다.
인사 대상자가 부하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반영하는 다면평가가 가져온 변화다. 특히 다면평가의 주 대상이 되는 국실장급인 1∼3급 고위 간부들은 직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행정자치부의 한 과장은 “아직도 부하 직원에게 큰 소리 치는 ‘간 큰’ 공무원이 있느냐”는 말로 변화의 정도를 설명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한 직원은 “최근 인사에서 한 간부가 다면평가를 간신히 통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간부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면평가를 통해 간부들에 대한 평가권의 일부를 갖게 된 일반 직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실국장급 간부들이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사무실에 나올 경우 일반 직원들도 ‘눈도장’을 찍기 위해 출근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지금은 그러한 현상이 거의 없어졌다는 것.
행자부 일반 직원들은 지난주 김두관(金斗官) 장관과의 대화에서 “휴일에 편히 쉴 수 있도록 실국장 등 간부들이 휴일에는 출근하지 않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 간부들이 다른 국이나 과의 직원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식사를 하자고 요청하는 등 부하들에게 접근하려는 모습도 달라진 현상 중의 하나다.
행자부의 한 직원은 “함께 근무한 적이 없는 간부들의 업무 능력은 평가할 수 없으므로 평소의 친분 관계가 다면평가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엇갈린 평가=중앙인사위원회가 최근 31개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9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다면평가가 평가의 공정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69.2%가 ‘긍정적’이라고 응답하는 등 공직사회는 다면평가 도입과 이에 따른 조직 문화의 개선을 반기는 분위기다.
행자부 이권상(李權相) 인사국장은 “다면평가가 활성화되면 조직의 분위기가 민주적으로 바뀌고 상하의 관계도 일방적 지시와 복종이 아니라 상호 협력관계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면평가가 업무의 능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행자부의 한 간부는 “업무처리에 문제가 있는 직원들을 야단치는 것이 마땅하지만 다면평가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라며 “다면평가가 인사를 좌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중앙인사위 설문조사에서 ‘다면평가의 인사운영 활용 정도’를 묻는 질문에 ‘전면적 활용’은 18.8%에 그친 반면 79.2%가 ‘부분적 활용’이 바람직하다고 응답했다.
▽다면평가 활용 실태=중앙인사위에 따르면 새 정부 들어 다면평가를 활용하는 중앙행정기관은 54개 기관 가운데 88.9%인 48개 기관이다. 이 중 다면평가를 승진에 반영하는 기관은 43개이다. 14개 기관은 다면평가를 보직관리에 활용하고 있으며 39개 기관은 성과상여금 지급에 활용하고 있다.
이현두기자 ruch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