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백화점, 재래시장 할 것 없이 영업이 안 된다고 아우성입니다. 소비자들의 얇아진 지갑 때문이겠죠. 그런데 꼭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라는 느낌이 최근 들었습니다.
며칠 전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떡볶이 장수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요즘 장사 잘 되세요?”(기자)
“말도 마세요. 절반은 줄었어요.”(아주머니)
“장사하는 분치고 잘 된다는 사람 못 봤는데….”(기자)
“정말이에요. 사스(SARS)인지 뭔지에다, 나라꼴이 이 모양이니 뭐가 되겠어요.”(아주머니)
“나라 돌아가는 사정과 떡볶이가 상관이 있어요?”(기자)
“아, 답답한 양반일세. 사람들이 불안해서 돈을 안 쓰잖아요!”(아주머니)
누구나 하는 하소연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술자리 안주거리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정치 탓’은 흔히 있으니까요.
이틀 뒤 부산에 취재를 가 패션1번가로 불리던 광복동의 한 고급 옷가게에 들렀습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네요.”(기자)
“비도 오고, 시절도 수상하고….”(판매원)
“롯데백화점이 생긴 이래 광복동 쪽은 상권이 점점 위축된다고 하던데….”(기자)
“그건 몇 년 됐어요. 요즘 파리 날리는 것은, 다 정권(政權) 때문이에요.”(판매원)
“정권 때문에요 ?”(기자)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판매원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관리하는 VIP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보면 “나라가 혼란스러운 요즘 같은 때는 현금이 최고”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는 겁니다. 이상하다는 느낌이 ‘퍼뜩’ 오더군요.
이때부터 “정말 현 정부가 잘못한 탓에 경기가 나쁘다고 생각하느냐”고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물었습니다. 그날 부산에서 만난 공기업 직원, 컨설팅 회사 사장, 편의점 주인, 철공소 주인, 택시운전사까지 대답은 한결 같았습니다. 적어도 돈이 없어 씀씀이를 줄이는 것처럼은 안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구체적 생활과 연결해 ‘정권 탓’을 하고 있더군요. 과거 ‘정의’, ‘민족’ 등 추상적 개념에 기반을 두고 정권을 욕했던 것과는 분명 뉘앙스가 달랐습니다. 제가 우연히 만난 사람들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나요?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