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 국가정보원의 조직 개편과 인사가 완료되었는데도 국정원 개혁방안에 대한 논의가 그치지 않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3월25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5월22일), 참여연대(5월29일), 한나라당 정책위원회(6월4일) 등이 개최한 토론회나 공청회가 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모임에서 집중 거론된 사안은 국정원의 인권 침해, 정치 관여 소지를 단절하기 위한 수사권 폐지, 국회의 통제 강화 등이다. 이제 국정원은 과거의 기능과 체제에서 벗어나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국정원 개혁의 논의들은 국가정보기관으로서의 고유 업무와 기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탈정치 탈권력기관화를 통해 어떻게 순수 정보기관으로 거듭날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국정원이 순수 정보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보다 먼저 정보기관을 운영해온 선진국들의 공통된 사례를 선택하면 된다.
첫째, 선진국 국가정보기관들은 정보의 수집, 평가만을 담당하며 정책 수립과 조정 기능은 맡지 않고 있다. 따라서 국가정책 수립 및 조정기능은 청와대나 국무총리 및 해당 부처의 장관이 맡아야 할 것이다. 대북 비밀송금사건에 깊이 개입된 것으로 알려진 국정원은 대북전략 수립, 대북사업 관련 조직 예산 기능을 통일부로 이관해야 한다.
둘째, 정보전문가 중에서 국가정보기관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를 임명하는 관례를 수립하고 정치적 고려에 따른 특별보좌관 등 정무직 임명은 삼가야 한다. 국정원 밖에서 정무직을 임명하면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 국정원이 정치기관이라는 논쟁의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 국정원장의 진퇴가 정권교체와 상관없는 관례를 세우게 되면 국정원은 확실히 정치와 권력에서 독립할 수 있다.
셋째, 국정원장의 임명과 예산 등에 대한 국회의 통제를 감수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국정원장 임명 문제로 마찰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 등 고위 공직자가 상원 청문회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 대통령은 장관 지명을 즉각 철회하곤 했다.
넷째, 정치인, 고위 공직자의 동향 보고 등 국가안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찰적 정보수집활동은 폐지해야 한다. 새 정부가 국내정치 정보활동 폐지를 거듭 주장하고 국정원 조직 개편시 관련 부서를 축소했지만 두고 볼 일이다.
다섯째, 9·11테러 이후 국내정보기관과 해외정보기관으로 분리되어 있는 선진국 정보기관들이 분리로 인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긴밀한 협조체제를 강화해 나가고 있는 점에 비추어 국정원은 통합형의 골격을 유지하되, 그 편제를 선진국 정보기관 모델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해외, 국내, 북한의 분야 구분이 첩보를 사장(死藏)시키고 유기적 협조를 저해하고 있으므로 정보 작성, 수집 공작, 지원 등 기능적 부서 구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국정원의 임무와 편제가 아무리 바뀌어도 인사가 공정하지 않으면 좋은 성과를 기약할 수 없다. 국가에 대한 충성과 전문성만이 인사의 잣대가 되어야 한다. 정권 교체 때마다 개혁이라는 구호로 수많은 정보전문가들을 몰아내는 일을 되풀이해 왔는데 이런 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송종환 명지대 초빙교수·전 국가안전기획부 해외정보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