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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등신외교’ 발언이나 등원거부나

입력 | 2003-06-09 18:15:00


6월 임시국회가 몇 걸음 못 가 공전하게 됐다. 함부로 말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정치권의 고질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 한나라당 이상배 정책위의장이 ‘등신외교’라고 막말을 해댄 것이나, 민주당이 이를 빌미로 국회 대정부질문에 불참키로 한 것이나 모두 비정상이기는 마찬가지다. 그 야당에 그 여당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체감경기는 물론 경제전망까지 외환위기 때보다도 좋지 않다고 해서 국민의 불안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위기상황 아닌가. 또한 국정의 전체적인 균형이나 법질서는 무시한 채 자신들의 권익 보장만 요구하는 이익집단의 집단행동이 줄을 잇는 혼란상황 아닌가.

그런데도 총체적 난국 수습의 중심이 돼야 할 정치권이 또다시 싸움으로 소일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직무유기 이상의 범죄다. 추가경정예산안이나 증권집단소송법안을 비롯해 시급히 처리해야 하거나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경제 민생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도 딱 하루 대정부질문을 하고 정쟁 때문에 국회 문을 닫은 정치권의 무신경과 무책임이 놀랍다.

이 의장의 발언은 그의 해명대로 ‘수사적 발언’이나 ‘경상도 지방에서 애교 섞인 책망을 할 때 흔히 쓰는 말’이라고 해도 지나쳤다. 과거에도 야당이 ‘등신’이란 용어를 사용해 정권의 실정을 비판한 적이 없지 않지만, 국가 대 국가의 통치행위인 외교에 대한 비판은 보다 신중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이 민주당의 대정부질문 불참 이유는 될 수 없다.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국회 안에서 따지고 푸는 게 옳다. 말 한마디 때문에 국회를 공전시키는 것은 집권여당답지 못하다. 혹시 신당 갈등으로 격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민주당이 국회를 볼모로 잡아 정국혼란을 호도하려 드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자아낸다.

청와대도 ‘무례한’ 표현에 대해서만 발끈할 일은 아니다. 먼저 방일외교 성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깊이 새겨보는 자세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