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9일 “일본은 한때 제국주의의 길을 걸으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 큰 고통을 주기도 했다”며 “(일본의) 방위안보법제와 평화헌법 개정 논의에 대해서도 의혹과 불안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일본 중의원 본회의장에서 중의원과 참의원 의원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연설에서 이같이 밝힌 뒤 “이 같은 불안과 의혹이 전혀 근거없는 것이 아니라면, 또는 과거에 얽매인 감정에만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일본이 아직까지 풀어야 할 과거의 숙제를 다 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또 “불행했던 과거사를 상기시키는 움직임이 일본에서 나올 때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의 국민은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면서 “2년 후 한일 국교 정상화 40돌을 맞을 때까지 두 나라 국민이 완전한 화해와 협력에 이르지 못한다면 양국의 지도자들은 역사 앞에 부끄러움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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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은 이어 “의원 여러분과 각계의 지도자들께 ‘용기 있는 지도력’을 정중히 호소하고자 한다”면서 “과거는 과거대로 직시해야 한다. 솔직한 자기반성을 토대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평가하도록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도자의 용기라고 생각한다”며 일본 정계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새로운 동북아질서 구상을 제안하고 △북한 핵 불용(不容) 방침 △양국간의 비자 없는 자유 왕래에 대한 기대 △일본 대중문화 추가 개방조치 검토 △자유무역협정(FTA)의 성공적 추진 노력 △재일 한국인의 지방참정권 부여 문제 등을 거듭 언급했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은 동행 기자단과의 조찬간담회에서 “일본이 세계 평화를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하면, 의심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면서 “현재로서는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과거의 노력도 점차 약해지고 있는 것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영빈관에서 아키히토(明仁) 천황 부부와 작별 면담을 한 뒤 3박4일간의 일본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해 서울 공항에서 귀국보고 행사를 가졌다.
도쿄=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