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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싱크탱크]삼성경제연구소

입력 | 2003-06-10 18:00:00

삼성경제연구소를 이끄는 임원들이 주례 회의를 마친 뒤 자료실에 모였다. 경제 경영 분석에는 박사들이지만 함께 신문용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쑥스러워했다. 왼쪽부터 홍순영, 공선표, 류한호, 정문건, 윤순봉, 이범일, 이언오, 윤종언, 강신장씨. 이훈구기자



《밤이 어두울수록 길을 밝히는 등불의 존재는 빛난다. 한국 경제는 반세기 만에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갈수록 국가간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빨리 쫓아가야 할 선진국의 발자국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을 분석 전망하고 한국 경제와 기업의 생존 전략을 마련할 전문가들의 존재가 소중하다. 오늘의 한국 경제를 진단하고 미래를 밝힐 경제계 싱크탱크 집단을 찾아 경제섹션 ‘동아경제’ 매주 수요일자에 소개한다.》

귀하는 매주 ‘CEO 인포메이션’을 받아보시는가? 그렇다면 귀하는 한국 사회의 ‘리딩(leading)’ 그룹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1995년부터 매주 펴내고 있는 ‘CEO 인포메이션’.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민간 보고서로 평가받고 있다.

최우석 소장

CEO 인포메이션은 한국 경제와 사회의 현안을 빨리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앞으로의 흐름을 가늠케 하고 있다. 이른바 한국 사회의 나침반인 셈이다.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극복을 위한 경제개혁 방안과 정책 대안들을 제시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작년엔 ‘부동산 등 자산 버블’에 대한 경고로 주목을 받았다. 최근엔 일본의 정책 실패를 거울삼아 장기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기 보고서뿐 아니다. 온라인 동영상으로 제공되는 유료 인터넷사이트인 SERI CEO(www.sericeo.org)는 한국 최고경영자(CEO)들의 ‘상상력의 발전소’로 자리잡았다. 우리금융지주 윤병철 회장은 이를 두고 “시장 흐름, 기술 진보, 마케팅 추세 등 경영 전반의 트렌드를 알 수 있게 해줘 유능한 비서실장을 둔 것보다 든든하다”고 한다.

‘세리(SERI)’라는 애칭으로 더 친숙한 삼성경제연구소. 86년 창립 이후 17년 만에 한국 최고의 민간 싱크탱크로 떠올랐다. 시의적절한 주제로 사회적 담론을 주도하고, 각 기관에 대한 경영컨설팅으로 사회 전반의 혁신을 지원하며, 여러 커뮤니티를 만들어 한국 사회를 네트워킹(Net Working)하고 있다.

▽SERI의 힘=노무현(盧武鉉)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2월 중순 삼성경제연구소는 ‘국정과제와 국가 운영에 관한 어젠다’라는 400여쪽의 보고서를 노 당선자측에 전달했다. 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로 선정된 ‘동북아 중심’ 프로젝트의 상당 부분이 이 보고서에 신세를 지고 있듯이 현 정부의 핵심인사들은 수시로 SERI의 연구 축적물들을 참고하고 있다.

SERI 연구조정실 류한호(柳漢鎬) 상무는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도 국정과제에 대한 방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면서 “국가와 정부가 필요로 하는 자료들을 언제든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SERI는 그동안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등 정부 부처는 물론이고 국민-주택은행 통합, 농-축협 통합, 서울대 한양대 등에 대한 컨설팅을 수행했고 서울시 고위공무원에 대한 위탁교육을 실시하는 등 수많은 기관에 대해 컨설팅과 교육을 해왔다. “외부의 도움 요청이 너무 많아 공공성과 연구소의 핵심 역량에 관련된 것만 선별해도 벅차다”는 것이 연구소측의 설명이다.

1995년부터 5년간 SERI 부사장을 지낸 전국경제인연합회 이규황(李圭煌) 전무는 “SERI의 힘은 한국 경제 현안들을 재빨리 이슈화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의미에서 SERI를 자칭 타칭 ‘신문사 특집부’라고도 한다. 국책이나 다른 기업연구소는 연구 과제를 한번 정하면 그대로 끌고 가는 데 반해 SERI는 필요하다면 기존 과제 연구를 중단하거나 새롭게 설정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조직이 유연하다.

이 전무는 “한시적인 태스크포스팀으로 영역을 넘나드는 연구를 활발히 하고 객관적 인사평가를 근거로 분명한 논공행상을 하는 것이 SERI 조직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SERI의 조직운영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한국의 간판격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강봉균(康奉均·현 국회의원) 원장이 SERI를 방문하기도 했다.

SERI의 인터넷홈페이지(www.seri.org)는 미국 헤리티지재단이나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 등을 제치고 세계 싱크탱크 홈페이지 가운데 당당히 페이지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SERI 홈페이지의 외부 회원은 45만명, SERI CEO는 3000명을 넘어섰다.

▽SERI를 이끄는 주역들=우선 모두 95명밖에 안 되는 연구인력으로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궁금증은 곧 풀린다. 인력 구성의 다양성이 그 열쇠다. 95명 가운데 22명이 전자공학 산업공학 등 이공계 학부를 다녔으며 관련분야 석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나머지 인력도 경제 경영 법학에서부터 관광 농업 고고학 미술 음악 건축 등에 이르기까지 전공이 다양하다.

95년 취임한 최우석(崔禹錫) 소장은 중앙일보 경제부장, 편집국장, 주필을 지낸 언론인 출신. 30여년간 경제 현장을 누빈 감각으로 지금도 중요한 연구과제와 어젠다를 직접 정하는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연구원들을 능가하는 엄청난 독서량과 한 분야 전문가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조그마한 기업연구소를 한국 최고의 민간 싱크탱크로 키워냈다. ‘이론과 실무를 연결하는 현장 밀착형 연구’와 ‘지식인의 사회적 사명’을 실천에 옮긴 덕택이기도 하다.

연구조정실 윤순봉(尹淳奉) 전무는 삼성그룹 비서실 출신. 연구과제 조정과 인사평가 등 연구소 살림을 도맡고 있다. 연구소를 현재의 조직과 운영 시스템으로 만들어낸 일꾼이다.

경제연구본부장 정문건(丁文建) 전무는 학술회의와 TV 토론 등에서 경제 동향을 분석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SERI의 대표적인 논객. 차분하고 논리적인 언변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정책연구센터장 이언오(李彦五) 상무도 ‘SERI의 입’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연구소 안팎에서 ‘팔방미인’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CEO 인포메이션 편집자이며 ‘금산을 사랑하는 모임’을 주도하는 등 지역경제와 농업에도 애정이 깊다.

해외경제실 김경원(金京源) 상무는 서울대 영문과, 미국 컬럼비아대 박사로 유창한 영어에 조리 있는 말솜씨로 상대를 곧바로 내편으로 만든다.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을 지내 실물경제에 밝고, 오디오와 군사·무기 분야 지식도 수준급이다.

윤종언(尹鐘彦·상무) 기술산업실장은 업무에서는 치밀하지만 취미생활에서는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 인간미가 돋보이는 인물로 꼽힌다.

경영전략실 이범일(李範一) 상무는 차분한 성격 덕분에 상하의 신망을 받고 있다. 6시그마센터와 생산혁신팀을 이끌고 있다.

홍순영(洪淳英·상무) 경제동향실장은 웬만한 일에는 흥분하지 않는 인내심과 후배들에게 인기가 높다.

인사조직실 장상수(張相秀) 상무는 신중한 성격의 일본통. 지식경영실 강신장(姜信長) 상무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SERI CEO’의 운영을 총괄하고, 대외 강의 때마다 높은 점수를 얻는 공선표(孔善杓) 상무는 컨설팅센터를 이끌고 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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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경영부산고연세대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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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어떻게 키우나 ▼

삼성경제연구소(SERI)에서는 박사라도 끊임없이 배우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입사 초기의 우리 연구인력은 국책 연구기관이나 대학 인력에 비해 결코 뛰어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3∼5년 지나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지요.” 최우석 소장은 SERI가 결코 간단한 조직이 아님을 암시했다.

최 소장에 따르면 SERI의 교육과정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문장 연습. 그는 “아무리 핵폭탄 같은 지식을 갖고 있어도 이를 운반할 미사일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면서 다른 사람들이 알기 쉽게 표현하는 능력을 강조한다.

연구원들은 입사하면 보름 이상 에세이 쓰기, 번역, 책 요약 등 문장 연습을 한다. 또 OJT(온 더 잡 트레이닝·직장 내 훈련) 제도가 있어 한 달 동안 연구조정실과 각 실을 순회 근무하면서 연구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익힌다. 신입 연구원에게 5년 정도 된 연구원이 3∼6개월간 1대 1로 연구방법, 보고서 작성방법, 자료실 이용 등을 지도하는 ‘멘토(mentor)’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석사는 연구소를 다니면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도록 지원하고, 박사도 국내외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짧으면 1개월, 길면 2년 이상 연구를 하도록 독려한다. 경영학석사(MBA)나 어학연수, 정보기술(IT) 과정 등도 적극 지원한다. 단순 업무직으로 입사한 여직원들도 대학과 대학원에 다녀 인터넷 홈페이지 운영을 담당하는 등 ‘지식화’에 동참하고 있다.

연구소 내 경쟁체제와 팀워크를 통한 시너지 효과 역시 이 연구소의 특징.

96년부터 ‘연구원의 프로화’를 선언하고 맨데이(Man day·연구원이 투입한 단위시간)라는 측정제도를 도입했다. 여기에 팀장이 평가하는 기여도, 소속 실장이 주는 점수, 외부 컨설팅 업무에서 받는 점수 등을 더해 상반기와 하반기에는 모든 연구원이 1등부터 100등까지 서열화된다. 연구과제 기획부터 최종 보고서까지 연구관리 프로세스도 전산화했다.

다른 기관에 근무하다 입사한 A연구원은 “SERI는 매우 효율적인 조직이고 교육 지원이 많다”면서 “다만 일이 과중한데다 독자적인 연구를 못하는 것이 아쉬움”이라고 말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