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른들은 집값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신문이나 TV 뉴스를 보면 매일 한두 건 이상 집값이나 부동산에 대한 기사가 나옵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6월 2일 대통령 취임 100일을 기념하는 기자회견장에서 “부동산가격이 갑자기 많이 오르는 일은 기필코 잡겠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이기에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요?》
▽집값이 왜 문제인가=요즘 집값이 문제가 되는 것은 한마디로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입니다. 2001년 이후 2년 사이에 서울 아파트의 매매가(소유권을 팔고 사는 거래)는 55%, 전세금은 60%가 각각 뛰었습니다. 2억원짜리 아파트가 2년 남짓한 기간에 3억원 이상으로 오른 셈입니다.
이런 식으로 빠르게 집값이 오르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우선 자기 집이 없는 사람들의 생활이 어려워집니다. 2년마다 계약을 새로 해야 하는 전세세입자는 올라간 만큼 돈을 마련해야 합니다. 하지만 월급을 2년 만에 60% 정도 올려주는 회사는 거의 없기 때문에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집을 옮겨야만 합니다.
집을 옮길 때에도 문제입니다. 같은 동네에 산다면 집 크기를 줄이거나 집값이 싼 다른 동네로 이사해야 합니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과 멀어질 수 있습니다. 신혼부부처럼 새로 집을 사려는 사람들은 그만큼 돈을 더 빌려야 합니다.
이러면 전세를 사는 사람이나 신혼부부 모두 직장에서 월급을 더 달라고 조를 수밖에 없습니다. 노사(勞使) 문제의 씨앗이 된다는 뜻이지요. 실랑이 끝에 월급이 올랐다면 회사는 인건비를 더 쓴 만큼 물건 값을 올려야 합니다. 이는 물가를 상승시킵니다. 물가가 오르면 생활비 부담이 늘어나 살림이 빠듯해집니다.
또 다른 문제는 땅값입니다.
집값이 오르면 땅값도 함께 오르지요. 땅값이 오르면 새로 집이나 공장을 지을 때 필요한 자금 부담이 커진다는 얘기가 됩니다.
부담이 커진 기업은 신규 사업을 벌이기가 어려워지고 기업이 새로운 사업을 벌이지 못하면 그 만큼 일자리가 줄어듭니다. 일자리가 줄면 역시 살림살이가 어려워집니다.
▽다른 부작용도 많아요=이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수천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보입니다. 집값이 오르자 부동산에 투자해서 돈을 남기려는 사람들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현재는 주상복합아파트나 오피스텔 등을 신청, 당첨이 되면 계약서를 쓴 뒤 즉시 다른 사람에게 되팔 수 있습니다. 이때 파는 사람은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의 웃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즘 은행에 돈 5000만원을 넣어두면 받을 수 있는 월 이자(정기예금 연리 4.29% 기준)는 평균 17만원 정도입니다. 따라서 모델하우스에서 두어 시간 줄서다 운 좋게 당첨만 되면 은행에 돈을 예금하는 것보다 최소한 몇 십 배 이상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된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열심히 일해서 돈 모아 집을 사겠다는 생각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우리 사회에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근로의욕’이 시들해집니다. 또 사이좋게 지내야 할 이웃간에 갈등이 쌓일 수 있습니다. 돈을 번 사람을 나쁘게 볼 이유도 없지만 이런 현상을 좋게 볼 수는 없지요.
▽집값 오르지 않게 하려면=이렇게 탈이 많은 집값 급상승을 잡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은 뭐가 있을까요?
우선 집을 많이 짓는 일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에서 집값이 한꺼번에 오른 가장 큰 이유가 새 집을 원하는 사람에 비해 새로 지어진 집이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이를 위해서 서울 주변의 경기 김포와 파주에 분당 일산과 같은 신도시를 건설할 계획입니다. 또 서울 강남과 분당 사이에 있는 판교신도시의 건설시기를 앞당기겠다는 방침도 세웠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운 좋게’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버는 사람들이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금을 공평하게 매기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세금을 많이 내도록 하는 방법을 매우 신중하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는 서울, 대전, 충남 천안 등 최근 부동산값이 많이 오른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나 ‘투기지역’ 등으로 지정한 뒤 아파트나 땅 등을 사고팔 때 내야 할 각종 세금을 많이 내도록 조치했습니다.
정부는 또 여윳돈을 가진 사람들이 투자할 만한 곳을 개발하느라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증권시장을 활성화해 돈을 빨아들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은행의 싼 이자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이 부동산시장에 몰려드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입니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투기지역이란? ▼
정부가 기존 주택의 가격이나 땅값이 빠른 속도로 오르는 것으로 판단. 집이나 땅을 팔 때 내는 세금을 다른 곳보다 2, 3배 가량 비싸게 내도록 정하는 지역.
▼투기과열지구란 ? ▼
정부가 새로 분양할 아파트 등 부동산에서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투기 바람이 걱정된다고 판단될 때 정하는 지역. 아파트 입주권인 '분양권'을 팔고 사는게 금지된다.
▼에피소드=정보격차 따른 모럴해저드 ▼
미국에서 자동차 안전벨트 착용을 의무화하자 교통사고가 늘었다고 합니다. 안전벨트를 매면 사고를 내더라도 목숨을 잃을 염려가 적어지므로 차를 함부로 몰았기 때문이지요.
또 집에 대해 화재보험을 든 뒤에는 불이 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지은 지 오래된 집일수록 화재가 나면 보상금을 받아 새집을 지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하는 탓입니다. 암 보험에 든 뒤 술을 더 마시고 담배를 더 피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정보의 비대칭성에 따른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라고 부릅니다. 정보의 비대칭성이란 보험 가입에서처럼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정보를 많이 갖거나 적게 갖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중고차 시장에 나오는 자동차를 내놓는 사람은 그 자동차에 대해 시시콜콜히 잘 알지만, 사려는 사람은 그 차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정보 비대칭성의 대표적 예입니다.
이처럼 유리한 정보 상황을 이용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위험을 지려하는 것이 바로 모럴 해저드입니다. 작년부터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거나 외상으로 물건을 많이 산 뒤 그 대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 모럴 해저드의 좋은 사례입니다. 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가능한 한 많이 빌려 쓴 뒤 돈을 제대로 갚지 않은 채 더 많은 돈을 꾸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모럴 해저드를 줄이고 없애기 위해선 모든 정보가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공표돼야 합니다. 생명보험 회사들이 고객이 암보험 등에 가입할 때 현재 앓고 있는 질병을 알려야 한다는 ‘고지(告知)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하나의 예입니다. 한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이 500만원이 넘는 사람들의 정보를 모든 금융기관이 서로 공유하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분에 넘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가짐이 모럴 해저드를 줄이는데 가장 중요합니다.
홍찬선기자 h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