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재현씨를 구금하고 실형을 선고한 것은 중국 지도부가 탈북자 문제와 같은 국제적 중요 사안에 대한 보도를 원치 않는다는 의미다.”
석씨에 대한 실형이 선고된 직후 비난 성명서를 내는 등 구명운동에 적극 참여해온 언론인보호위원회(CPJ)의 뉴욕본부 아시아담당인 카비타 메논 국장(사진)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합법적인 정부가 외국인 저널리스트를 장기간 투옥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일”이라며 “석씨를 석방하는 것만이 국제 비난 여론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이 현재 39명의 언론인들을 감금하고 있지만 외국인(한국 국적)인 석씨를 감금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한국 정부와 언론이 석씨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아 유감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석씨가 탈북자들을 현지에서 돕는 역할을 했다는 중국 당국의 주장에 대해 “그는 언론인 자격으로 그곳에 갔다”며 “뉴욕 타임스의 지시에 따라 현장에 간 것은 아니지만 취재를 마친 뒤 관련 사진들을 뉴욕 타임스에 게재할 예정이었다”고 주장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석재현씨 체포 관련 일지▼
△1월 18일 중국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에서 석재현씨 체포
△1월 말 한국외신기자클럽, 석씨 석방 요구 청원서 중국 정부에 전달
△3월 31일 옌타이 검찰, 석씨 공식 기소
△5월 22일 옌타이 중급법원(지방법원) ‘타인 불법 월경조직죄’로 징역 2년 선고
△5월 29일 석씨, 1심 판결에 불복, 지난(濟南) 고급법원(고등법원)에 항소
석재현씨 관련 반응
△한국외신기자클럽, 석씨 석방 촉구 청원서 중국 정부에 전달
△언론인보호위원회(CPJ), 국경없는기자회(RSF) 등 유죄 판결 비난
△미 일부 상·하원 의원들 주미 중국 대사에게 유감 표명 및 석방 촉구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등 석방 촉구 및 중국 정부 비난
▼왜 체포됐나▼
석재현씨는 올 1월 중국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항에서 보트를 타고 한국과 일본으로 밀입국하려던 탈북자들을 도왔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징역 2년에 벌금 5000위안(약 75만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탈출을 시도했던 70여명의 탈북자들은 모두 중국 당국에 체포됐다.
부인 강혜원씨에 따르면 석씨는 탈북자들의 대규모 해상탈출이 조만간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후 1월 13일 중국에 입국했다. 그는 중국 공안의 대대적인 검거작전이 펼쳐지던 당시인 18일 오전 6시30분경 강씨에게 국제전화를 걸어와 “아무래도 이번 취재는 실패한 것 같다. 1개 대대 규모가 넘는 무장 공안이 주위를 포위하고 있다”고 말한 뒤 연락이 끊겼다.
그러나 체포 당시 석씨의 행적에 대해서는 중국 정부와 석씨 주변인사들의 주장이 일치하지 않는다.
중국 당국은 석씨가 미 뉴욕 타임스의 지시에 따라 당일 현장에 있었던 것이 아니며, 탈북자들의 ‘브로커’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언론인 자격으로 취재 중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 또 중국 당국은 그가 취재비자가 아닌 관광비자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석씨의 주변인사들은 “중국 당국이 취재비자를 아예 내주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 및 석씨 주변인사들도 “석씨는 단지 중국 내 탈북자들의 비참한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부인 강씨는 “남편은 저널리스트로서 탈북자의 고통을 기록하는 것에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위험한 줄 알면서도 중국으로 갔으며 그런 그를 만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한국정부 별다른 관심없어 유감"▼
중국이 탈북자들의 ‘해상 망명’을 도왔다는 혐의로 뉴욕 타임스 프리랜서 사진기자 석재현씨를 체포, 실형을 선고한 데 대해 국제적 비난 여론이 쏟아지면서 석씨의 구명운동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미국의 주요 언론과 언론인권단체의 움직임이 활발하나 앞으로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미 정계 인사들의 움직임. 마이클 호로위츠 허드슨 연구소 인권국장 등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일부 상하원 의원들이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인권문제와 탈북자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공화당 내 강경파 의원들과 보수적 단체들은 이를 계기로 탈북자 문제를 다시 본격 거론할 가능성도 크다는 것. 호로위츠 국장은 “중국 정부가 아무런 해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경우 조만간 미국 정가에서 이 문제가 본격 이슈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면서 “중국 정부가 강경하게 나올 경우 미 의회에서의 결의안 채택 등도 고려 대상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과의 공조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미 행정부의 반응도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탈북자 문제를 얼마나 민감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고 있는 미 행정부가 석씨 문제를 공식 안건으로 제기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편 서울외신기자클럽도 최근 “석씨는 탈북자들의 참상을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현장에 있었으며 그를 체포한 것은 중대한 언론 자유 침해”라는 내용이 담긴 석방 촉구 청원서를 중국 정부에 전달했다.
외신기자클럽 관계자는 “중국 외교부 당국자도 석씨가 당시 현장에서 (탈북자 지원이 아니라) 촬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공식 석상에서 인정했다”고 말했다.
석씨의 부인 강혜원씨도 8월 초 한 달간 미국을 방문, 구명운동을 펼 계획이다.
강씨는 11일 “미 동서부 주요 대학 등을 중심으로 남편의 사진전시회와 중국 당국의 유죄판결을 비난하는 연설회를 가질 예정이며 뉴욕 타임스 본사에서도 관련 행사를 여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또 “미 언론들에 비해 한국 정부와 언론이 무관심한 것 같아 섭섭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며 “그러나 최근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 대사관이 중국 당국에 인도적인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강씨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7월 중국 방문 때 남편에 대해 언급해주길 바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덧붙였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