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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인터넷경매 1위 '옥션'

입력 | 2003-06-10 18:54:00


산업사회에서 판매자(Seller)와 구매자(Consumer)의 역할은 뚜렷했다. 1990년대 중반 정보사회에 접어들면서 이 경계는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덕분에 소비자 앞에 물건을 내놓는 절차가 매우 간소해지면서 누구나 원하면 물건을 내다 팔 수 있게 됐다.

구매만 해온 소비자들이 사이버장터(e마켓플레이스)에 모여 서로 물건을 사고파는 ‘셀슈머(Seller+Consumer)’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생산자→소비자의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던 정보가 양방향으로 바뀌면서 소비자의 역할은 기업들의 제품 제작단계부터 지식을 제공하는 ‘프로슈머(Producer+Consumer)’로 바뀌었다.

셀슈머 덕분에 사이버장터 전문기업들이 성업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 ‘1등이 몽땅 차지한다(Winner takes it all)’는 가혹한 원칙에 따라 한국의 셀슈머들은 최근 특정 사이버장터에 집중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옥션’(대표 이재현·www.auction.com)이 그곳이다.


▽이런 거래도 가능해요=옥션은 올 1·4분기에 거래금액 1500억원, 매출액 127억원에 61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흑자로 전환했다. 경매방식으로 판매자가 내놓은 물건을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옥션에서는 지금 25초에 화장품 1개, 5초에 옷 1벌, 50초마다 공CD 1세트, 1시간에 디지털카메라 9대와 TV 5대, 하루에 김치 2.4t이 팔리고 있다.

신제품만 판매하는 쇼핑몰과 달리 이곳에서는 신제품뿐 아니라 시판 전의 시제품, 재고품, 중고품 등 제품이 태어나서 사라지기까지 제품수명주기(Product Life-cycle) 전 단계의 물품이 거래되고 있다.

아기가 크는 바람에 유아용 자전거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가? 디지털카메라를 업그레이드하면서 구형카메라가 불필요해졌는가?

과거에 이런 중고품을 팔기란 쉽지 않았다. 어딘가 수요는 있지만 수요자를 찾아내는 데 드는 ‘거래비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옥션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쉽게 만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거래를 가능케 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옥션의 대주주인 미국 e베이(www.ebay.com)에 영화 매트릭스에 소품으로 제공된 휴대전화를 경매로 내놓았다. 500대 한정 생산된 이 제품은 2325달러에 낙찰됐다. 옥션에는 이 같은 시판 전 제품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제품가격을 결정하기 전에 시장가치를 가늠해 보는 것이다.


▽“나 저 사람 못 믿겠어”=하루 67만명이 11만건의 거래에 참여하는 옥션에서 셀슈머들이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물건을 거래한 것은 아니다. 98년 4월 서비스를 시작했을 당시 옥션에서는 코스닥등록 전 주식을 장외에서 매집해 등록 후 시세차익을 노리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그러나 주식을 건네받기 전에 돈을 주거나 돈을 받기 전에 주식을 건네는 사람은 적었다. “돈을 보관했다가 주식 인도 사실이 확인되면 매도자에게 전달해 달라”는 요구가 늘어났다. 옥션이 구매대금을 대신 보관하다가 지급하는 에스크로 제도를 도입했고 이제 옥션은 장터 제공뿐 아니라 신용보증의 역할까지 떠맡았다.

▽오로지 수익=옥션은 2000년 6월 코스닥에 등록하고 2001년 2월 미국 e베이에 회사가 인수되면서부터는 ‘돈을 버는 사업만 남긴다’는 원칙에 따라 개인 대 개인(C2C) 거래 부문만 남기고 모두 정리했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인 이 사장이 작년 7월 두루넷 사장을 거쳐 옥션에 오면서 본격적인 ‘데이터 경영’을 시작했다. 데이터분석팀을 신설해 신규회원이 입찰에 참여하기까지 시간, 물건 구매 주기, 구매 금액, 특정 시기에 가입한 회원들의 행동 유형, 행동 유형을 유발시킨 마케팅 기법과 사이트 구성 등 200여개 항목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서비스를 개선해 갔다.

이에 따라 예컨대 디지털카메라에 관심이 있는 회원은 그와 관련된 정보를 제때 e메일로 받아볼 수 있게 됐다.

▽27개국 네트워크=e베이가 대주주가 되면서 옥션은 세계 27개국 e베이 지사가 제공하는 첨단 마케팅기법을 덤으로 얻었으며 자체 개발한 최신 경영기법을 외국에 제공하고 있다. 광고를 클릭하면 해당 물품 구매 코너로 직접 이동하는 아이디어는 독일 e베이가 제공했고, 옥션의 박주만 상무가 각종 경영관련 데이터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한 차트는 미국 본사에서 ‘주만스 차트’로 명명해 27개국 자회사의 표준양식으로 채택했다.

앞으로도 옥션은 사이버장터 분야에만 집중 투자할 계획. 이 사장은 “첨단 경영기법으로 회사와 시장을 키우는 동시에 세계 27개국 e베이 계열사끼리의 경쟁에서도 1위에 올라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옥션은 매출규모에서 현재 독일 e베이에 이어 영국과 함께 2, 3위를 다투고 있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