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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話 국민의 정부]2부 ⑤사상 초유의 '檢亂'

입력 | 2003-06-11 17:40:00


1999년 1월 27일 오후 5시45분경. 심재륜(沈在淪) 대구고검장이 굳은 얼굴로 대검 청사 별관 1층 기자실에 들어섰다. 그는 노란 서류봉투에서 ‘국민 앞에 사죄하며’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꺼내 기자들에게 나눠줬다.

성명서를 읽는 심재륜의 목소리에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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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륜 당시 대구고검장이 검찰 수뇌부 퇴진을 요구한 다음날인 99년 1월28일 김태정 검찰총장(오른쪽)과 이원성 대검차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대검 구내식당으로 들어서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대전 이종기(李宗基) 변호사 수임비리 사건을 계기로 검찰과 법조계의 위신이 땅에 떨어져 검찰 사상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고 있는 지금 저는 매우 비통한 심정입니다.(중략) 그동안 검찰총수와 수뇌부는 권력만 바라보고 권력의 입맛대로 사건을 처리하여 왔으며 심지어 권력이 먼저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권력의 뜻을 파악해 시녀가 되기를 자처해 왔습니다. (중략) YS정부와 김현철(金賢哲)씨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 자리에 오른 검찰총수 및 수뇌부는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권력에 맹종하여 자리를 보존하고 차지하기 위해서 지금 검찰조직의 기초를 황폐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검찰총수 및 수뇌부는 후배 검사들의 사표를 받기 전에 무조건 먼저 사퇴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저도 기꺼이 퇴진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검찰을 정치권력의 시녀로 만든 당사자들’, ‘YS정부와 김현철씨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 자리에 오른 검찰총수 및 수뇌부’란 그의 발언은 김태정(金泰政) 검찰총장과 이원성(李源性) 대검차장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현직 고검장이 검찰 수뇌부를 ‘정치 검사’로 규정해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이 미증유 사태의 뿌리는 조금 앞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자회견을 갖기 10여일 전인 1월18일 심재륜은 뜻밖에 대검 감찰부의 조사를 받았다.

모 방송이 1월7일 폭로한 대전 이종기 변호사의 사건수임 비밀장부에 이종기에게 사건을 소개한 판검사를 포함해 법원과 검찰직원 등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이 중 일부가 사건 소개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대검은 감찰부장을 대전지검에 파견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심재륜은 사건 소개와는 무관했다. 문제는 이종기가 “95년 심재륜 대전지검장에게 10여회에 걸쳐 모두 1000만원 상당의 술접대를 했고 전별금 100만원을 줬다”고 진술한 것이었다.

심재륜의 설명.

“95년 이종기 변호사를 두 차례 우연히 술집에서 만나 합석한 적은 있지만 접대를 받은 적은 없습니다. 음모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1월18일 전국 고검장 회의에 참석한 뒤 대검 감찰부장이 나를 사무실에서 잠깐 보자고 그랬습니다. 그게 조사를 하겠다는 통보였죠. 그때까지 내가 조사 대상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날 고검장 회의의 주의제는 이종기 변호사 사건이었다. 김태정은 심재륜을 지목해 “이 변호사에게서 1000만원 이상을 받은 검사도 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의견을 물었다. 심재륜은 “그런 시정잡배나 할 짓을 검사가 했다면 구속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회의 직후 조사를 받으면서야 심재륜은 이종기가 술 접대 및 전별금과 관련한 진술을 한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심재륜은 “김태정 총장이 회의 전에 이 변호사의 진술 내용을 보고 받은 상태에서 나를 떠 본 것이 분명하다. 음모의 일환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빙성이 의심되는 이종기 진술을 바탕으로 심재륜이 조사대상에 포함됐음이 알려지자 검찰 안팎에서는 ‘수사가 심재륜 고검장 등 특정인을 제거하기 위해 이용되고 있다. 수뇌부가 이 변호사로 하여금 특정인의 비리를 진술하도록 회유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퍼졌다.

특히 대검이 이종기의 사건수임 비밀장부가 작성된 92∼97년 대전고검과 대전지검의 간부였던 검사들의 지휘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음모론은 더욱 힘을 얻었다. 당시 이 대전 법조비리 수사의 책임자는 유력한 총장 후보인 사법시험 5회 이원성이었고 그의 경쟁자로 거론되던 심재륜을 포함해 사시 6, 7회의 고검장 4명이 문제의 기간 동안 대전고검과 지검간부로 일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김태정이 부인 연정희(延貞姬)씨가 연루된 ‘옷로비 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대전 법조비리사건을 의도적으로 키우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실제 심재륜이 대검 감찰부의 조사를 받은 1월18일 연정희는 공교롭게 옷로비 사건과 관련해 사직동팀(경찰청 조사과)의 조사를 받았다.

한 검찰 고위직 출신 인사는 “당시 검찰 안팎에서는 옷로비 사건을 덮기 위해 언론의 주목을 받을만한 다른 희생자가 필요했던 게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심재륜은 90년 초대 서울지검 강력부장으로 폭력조직인 광주 서방파 두목 김태촌(金泰村)씨 등 거물급 폭력배들을 구속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들과 호남지역 출신 검사들 간에 친분이 있음을 밝혀낸 바 있다. 이 때문에 두고두고 일부 호남검사들이 심재륜을 껄끄러운 존재로 생각했던 것도 사태의 배경에 깔려 있었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아무튼 검찰사상 초유의 집단항명사태인 ‘검란(檢亂)’의 근본 원인은 김태정 총장과 이원성 차장에 대한 검사들의 불신이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검사의 설명.

“98년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들어선 뒤 이어진 총풍 세풍 사건 등의 수사가 ‘야당 죽이기’로 일관하자 검찰수뇌부가 정치권에 지나치게 밀착한다는 비판이 검찰 내에서 일었죠. 또 당시까지 전별금과 떡값 수수는 관행이었던 만큼 검찰 전체의 문제였는데도 수뇌부가 일부 검사에게만 책임을 지우려한다는 불만이 컸습니다. 오히려 검찰총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결국 2월1일 서울 인천 부산지검의 평검사 150여명은 사실상 김태정 총장 등 검찰 수뇌부의 퇴진을 촉구하는 연판장을 만들어 제출했다.

그러나 설 자리를 잃은 김태정이 은밀하게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으나 DJ는 김태정에 대한 강한 신임을 보였다.

여권 핵심 관계자의 설명.

“김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는 김태정을 끔찍이 아꼈습니다. 김태정 총장이 사의를 표명하자 이 여사는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줬던 사람을 내치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DJ도 같은 생각이었죠.”

이 여사가 김태정을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줬던 사람’이라고 부른 배경은 바로 97년 대선 직전 신한국당(현 한나라당)이 폭로한 ‘DJ 비자금’ 사건의 수사를 유보한 일 때문이었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김태정 총장이 당시 한 검찰간부를 미리 DJ에게 보내 수사유보 결정을 귀띔해준 것으로 안다”고 말하기도 했다.

DJ의 신임을 얻은 김태정은 심재륜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99년 2월1일 검찰은 이종기 사건 최종 수사결과 발표문에 심재륜이 ‘전별금 100만원과 10여회에 걸쳐 100만원씩 1000만원 상당의 술 접대를 받았다’고 적었다. 술 접대를 비리 혐의로 기록하거나 술 접대를 금액으로 환산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결국 2월3일 소집된 징계위원회는 심재륜에 대해 면직 결정을 내렸고 다음날 DJ는 법무부가 제청한 심재륜의 면직을 바로 재가했다.

그 뒤 DJ는 김태정을 멀리하기는커녕 99년 5월24일 김태정의 부인 연정희의 옷로비 사건 연루의혹이 언론에 처음 보도된 바로 그날 김태정을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시켰다.

그러나 DJ는 장관 임명 15일 만인 6월8일 진형구(秦炯九) 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의 책임을 물어 김태정을 경질했다.

김태정은 청와대가 옷로비 사건을 내사하던 99년 2월 말 당시 박주선(朴柱宣) 대통령법무비서관에게서 사직동팀의 옷로비 사건 보고서를 넘겨받아 신동아그룹 박시언(朴時彦) 부회장에게 넘겨준 혐의(공무상 기밀누설 등)로 99년 12월4일 구속됐다.

DJ정권에서 요직을 지낸 S씨는 “정실을 지나치게 중시한 DJ의 잘못된 인사 관행이 김태정뿐 아니라 DJ 자신에게도 독(毒)이 됐다”고 말했다.

검란이란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해 분명한 경질 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옷로비 사건의 와중에 무리하게 김태정을 법무부 장관으로까지 승진시킴으로써 결국 국정운영 전반에 큰 부담을 떠안게 됐다는 얘기다.

한편 심재륜은 2001년 8월24일 대법원에 의해 면직 취소 확정 판결을 받고 검찰에 복귀했다가 2002년 1월 이명재(李明載) 검찰총장 취임에 맞춰 퇴임했다.

심재륜은 “대법원의 판결은 DJ가 나에 대해 내린 면직 처분 재가가 정당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DJ 인사의 과오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이동관 정치부 차장

▽정치부=윤승모 차장급기자 박성원 최영해

김영식 부형권 이승헌기자

▽경제부=반병희 차장 홍찬선 김동원 박중현 김두영기자

▽사회부=하종대 이명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