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애널리스트들은 고용 동향을 대단히 중요하게 취급한다. 기업들이 활력을 되찾아가는지를 판가름하는 지표로 여기기 때문이다. 최근 5월 고용통계가 “기업들의 해고가 줄어든다”는 메시지를 전하자 증시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한때 미국 경제의 상징이었던 실리콘 밸리는 2001년 3월 경기침체가 시작된 이래 2년간 15만8000개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7개 중 하나꼴이었다. 극심한 침체양상을 보이던 이곳에서도 회복의 싹이 나타나고 있다고 애널리스트들은 반기고 있다. 1년 전과 비교한 일자리 감소 비율이 4월 중 3.9%를 나타냈는데 이것이 이번 대량해고가 시작된 2001년 7월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나쁘긴 하지만 좋아지는 징조가 뚜렷하다는 것이 애널리스트들이 제시하는 포인트다.
실리콘 밸리에서 유명한 구인(救人)게시판인 크레이그스 리스트(craigs-list.com)에는 작년엔 한 달에 200건가량이 떠 있었다. 요즘은 한달에 300건가량으로 늘었다. 올 1월 250건가량에 비해서도 20% 증가한 수준이다. 소프트웨어 메이커인 베리타스의 고객센터에서 일자리를 잡은 미타 산두(34)가 “6개월 안에 직장을 찾으면 다행이다 싶었는데 두 달 만에 성공했다”며 기뻐하고 있다고 한 신문은 소개하고 있다.
구인증가와 함께 해고 감소도 눈에 띈다. 실리콘 밸리의 중심인 새너제이의 일자리는 4월 중 1년 전에 비해 3만4000개 감소했다. 회복까지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작년 2월 중 전년에 비해 10만5100개가 적었던 데 비하면 상황이 훨씬 좋아진 셈.
이 같은 경기회복 기대감에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인하 가능성 언급으로 10일 뉴욕증시는 오름세를 나타냈다. 지난 주말과 9일의 하락세로 조정이 이뤄졌다고 투자자들은 평가하고 있으며 ‘나쁜’ 경제지표들이 여전히 많지만 ‘떠나가는 차’를 놓칠 수는 없다는 태세다. 기관도 매수세에 가담했다.
반도체주는 정규장에서는 오름세를 보였으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가 2분기 실적 부진 가능성을 밝힘에 따라 시간외거래에서 하락세로 돌아섰다. TI는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영향으로 실적이 예상보다 나빠질 것 같다고 밝혔다.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노키아와 모토로라도 사스의 영향을 이유로 실적 전망치를 사실상 하향조정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