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의 어업 전진기지 저동항의 부두에 모인 울릉청년단원들. 뒤로 울릉도의 상징인 성인봉이 보인다.-울릉도=이권효기자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의 멧부리 방울 튀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청마 유치환·靑馬 柳致環의 ‘울릉도’ 중에서) 포항 호미곶에서 2400t 여객선을 타고 3시간 만에 닿는 울릉도. 관광객들에겐 ‘시간이 멈춘 듯한’ 경치와 오징어 산채 같은 먹을거리가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이곳에서 현재진행형으로 ‘개척’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울릉의 인구는 1974년 3만명에서 현재 9600여명으로 뚝 떨어진 상태다. 20명가량 선원이 필요했던 오징어 채낚기어선이 자동화되면서 2∼3명이면 충분해졌으니 인구 감소는 당연한 일이었다. 교육이나 직장 때문에 육지로 빠져나가는 경우도 이어졌다.
오래전부터 울릉 주민들은 스스로 섬의 운명을 짊어지고 개척해야 한다고 믿어왔다. 해적의 약탈로 섬을 비워놓는 공도(空島) 정책과 주민이주 정책이 번갈아 시행된 탓이다. 오죽하면 ‘군민헌장’ 다섯가지 가운데 첫째가 ‘부지런히 일하고 스스로 살길 열어 복된 살림 마련합시다’일까. 인구 감소와 함께 주민 연령이 빠르게 고령화되면서 ‘스스로 살길’조차 찾기 어려워보였다.
이 같은 어두운 상황에서 15년 전부터 젊은이들이 “울릉의 미래를 짊어지겠다”고 나서면서 분위기는 반전되기 시작했다. 조상들이 목숨 바쳐 개척한 울릉도를 지키자며 젊은이들이 뜻을 모은 것은 1988년 2월. ‘울릉청년단’이라는 단체를 결성하면서 이들은 어느새 섬의 버팀목으로 자리 잡았다.
군세(郡勢)가 약해지면서 자포자기에 빠져 있던 주민들도 청년들이 섬 이곳저곳을 누비며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자 함께 용기를 냈다.
“섬에서 먹고 살기 어려우면 청년들이 줄어듭니다. 육지로 나가는 젊은이를 어떻게 막습니까. 당장 울릉도를 획기적으로 바꾸기는 어렵지만 가만히 내 일만 하고 있어서는 더더욱 안 되죠.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울릉도를 지키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울릉 청년단 16대 단장 김영태·金榮泰·34)
청년들은 각자 일과를 마치면 귀가하기 전 도동항 인근의 청년단 사무실에 먼저 들른다. 울릉도의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대기 위해서다. 요즘은 울릉의 당면 문제인 교통 의료 교육이 토론의 주제다.
울릉도의 관문 도동항. 땅값이 평당 2000만원 가량으로 형성돼 있다.-울릉도=이권효기자
김 단장은 “육지에서는 살 수 있는 응급환자도 울릉도에선 죽을 가능성이 높다”며 “의료현실도 열악하지만 근본적으로 교통이 너무 불편하다”고 강조했다. 정말 급하면 해군 헬기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이것도 이용절차가 복잡해 속이 터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울릉청년단은 수년 전부터 비행기 취항을 추진하고 있다. 100여명을 태울 수 있는 비행기가 취항하면 울릉은 세계적인 관광섬으로 비약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몇년 전 일본 도쿄대학 교수를 안내해준 적이 있어요. 이렇게 관광자원이 풍부한 섬을 왜 한국정부가 내버려두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일본 같으면 이런 섬은 정부가 나서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곳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울릉교육청 직원 서진식·徐珍植·35)
울릉토박이 30대 60명과 40대 등 100여명으로 구성된 울릉청년단은 섬의 모든 일에 앞장서고 있다. 혼자 사는 노인을 돌보고 세상을 뜨면 장례도 맡는다. 주민의 12%가량이 노인이어서 장례 치르기도 보통 일이 아니다. 지금은 화장을 많이 해 다소 나아졌지만 수년 전만 해도 청년들이 나서지 않으면 상여 멜 사람을 구하기조차 어려웠다.
관광객들은 울릉의 관문인 도동(道洞)항이 깨끗하다며 좋아한다. 하지만 이것도 청년단의 덕분이다. 스쿠버다이버 회원 20명은 15년 전부터 해마다 두 차례씩 대대적인 바다 밑 청소를 벌이고 있다. 매년 거둬들이는 쓰레기가 3t 트럭 4대분 정도다.
조를 짜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도동과 저동을 다니며 방범활동을 펴고 청소년을 보호하는 일도 이들의 몫이다. 1999년에는 도동항을 순찰하다 70대 관광객을 익사 직전에 구해 경찰청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울릉주민의 여객선 편도요금이 일반요금보다 1만원가량 싼 3만8500원으로 하는 데도 청년단이 앞장섰다.
울릉어업인총연합회 김성호(金成浩·58) 회장은 “나라의 장래를 보려면 그 나라의 청년을 보면 된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며 “궂은일과 주민 뒷바라지를 하는 이들 덕분에 울릉주민들이 하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단은 지금 ‘소규모 주민으로 잘사는 섬’을 만드는 경제적 묘안을 짜내느라 고심하고 있다.
정성환(鄭成煥·37) 전 단장은 “인구가 1만명일 경우 울릉도가 어떤 발전 모델을 택해야 할지를 함께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울릉주민이 1년 동안 내는 세금은 모두 합쳐봐야 16억원에 불과해 이것만으로 지역경제를 일으킬 수는 없다”며 “결국 자연환경을 관광자원화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울릉도는…▼
‘동해의 갈라파고스’ ‘희귀식물의 보고(寶庫)’ ‘천혜의 자연경관’ ‘국토 전략상의 요충지’ ‘국토의 자존심’….
수심 2000m에서 솟아오른 화산섬 울릉도를 예찬하는 수식어는 셀 수 없이 많다. 전국에서 연간 20만명 안팎의 관광객이 찾는 ‘국민 섬이다’.
울릉도는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다. 면적은 72.56km²(경북의 0.4%)로 서울 여의도의 7배 크기. 독도를 포함해 모두 44개의 섬이 딸려있다. 성인봉(해발 984m)을 중심으로 대부분 경사지이며 전체 모양은 오각형. 평지는 나리분지(60만평)뿐이다.
울릉도의 최대 과제는 교통 여건 개선. 오창근(吳昌根·61) 군수는 “울릉도는 세계적인 관광휴양지로 탈바꿈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100명 정도 탈 수 있는 여객기가 서울과 포항에서 개설된다면 의료 복지 교육 문제도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울릉도는 신라 지증왕 13년(512)에 처음 문헌에 등장하고, 하슬라(지금의 강원 강릉) 군주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 숙종 19년(1693) 어민 안용복이 일본 어부들과 충돌해 외교분쟁이 발생했고, 안용복이 1696년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는 조선 영토임을 확인했다.
울릉군이 주민 400여명을 대상으로 최근 조사한 결과 70%가 울릉도의 매력으로 ‘수려한 자연경관과 생태자원’을 꼽았다. 발전 가능 유망산업은 ‘자연자원을 활용한 관광산업’(56%) ‘오징어 중심의 수산가공업’(21%) 순으로 답했다.
대한불교 진각종을 창시한 손규상(孫珪祥) 종조, 서원섭(徐元燮) 전 경북대총장, 이종항(李鍾恒) 전 국민대학장, 정종인(鄭宗仁) 전 국민은행 부행장, 언론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창룡 인제대 교수, 이영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이곳 출신이다.
울릉도=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울릉도 워치도그' 배상용씨▼
5대째 울릉도에 살고 있는 배상용(裵相庸·37·울릉읍 저동·사진)씨는 ‘울릉도의 마당발’ ‘울릉도의 워치도그(watchdog·감시견)’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젊은이다.
그는 1999년 인터넷에 ‘울릉도닷컴(ullungdo.com)’을 개설해 울릉을 육지와 연결해주는 가교역할을 혼자서 톡톡히 해내고 있다. 울릉도닷컴의 유일한 기자인 배씨는 휴대전화를 두 대 가지고 다닌다. 관광성수기에는 전국에서 하루 200여통의 전화가 쇄도하기 때문이다.
배씨는 울릉도에서 가장 바쁜 사람 가운데 한명이다. 숙박업을 하느라 손님을 챙기는 한편 울릉의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성역 없이’ 문제점을 찾아내고 인터넷에 ‘울릉도닷컴 배상용 기자’라는 이름으로 기사를 쓰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여객선 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는데 울릉의 유지라는 사람들이 표를 몰래 구해 배를 타는 것도 그의 ‘안테나’를 피할 수 없다.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 물어보면 막히는 게 없다.
“토박이지만 한동안 울릉도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어요. 좁은 섬이지만 여기서도 크고 작은 불합리나 부조리가 적지 않습니다. 군정(郡政)을 비판하면 공무원들이 당장은 싫어하겠지만 멀리 보면 결국 울릉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유학을 갔지만 고등학교와 군복무를 마친 뒤 육지생활을 정리하고 귀향했다. 부모를 모시고 울릉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군 행정이나 관광객 문제 등을 조목조목 비판해 인터넷에 올리면 ‘젊은 놈이 뭘 아느냐’고 나무라는 경우도 있지만 응원하는 주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울릉도의 가치를 절실히 깨닫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어요. 울릉도닷컴을 관광홍보 기능을 넘어 울릉의 언론으로 발전시켜 울릉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아 넘치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울릉도=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