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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일과 꿈]최정원/오늘을 만들어준 '내일이면…'

입력 | 2003-06-11 18:23:00


어떤 일이든 시작을 앞두었을 때 마음속에 떠올리는 노래 제목이 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1막 마지막 장면에서 혁명 하루 전 노래하는 ‘내일이면(One day more)…’이 그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꿈을 성취하거나 작은 사랑을 이루기 위해 내일을 준비해봤을 것이다. 나 역시 이 가슴 설레는 말에 지금까지의 내 인생 모두를 ‘올인(All In)’하며 살아왔다.

▼새 무대 설 때마다 그 노래 생각 ▼

초등학교 시절 모 방송사 어린이합창단 첫 녹화 전날, 고교 3학년 시절 뮤지컬 배우로 입문하기 위해 탭댄스 발레 발성 등을 배우러 가기 전날, 지금까지 16년 동안 18개의 뮤지컬 작품들을 할 때마다 치러야 했던 오디션 전날, 그렇게 결정된 배역을 몇 달 동안 연습하다 막이 오르기 전날 ‘내일이면…’을 되뇌곤 했다.

1998년 결혼 전날 밤 ‘이제 내일이면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구나’ 하며 가슴 부풀었고, 1999년 출산을 앞두고는 병원에 입원해 ‘이제 내일이면 나도 엄마가 된다’는 설렘에 밤잠을 설친 기억도 새롭다.

배우이자 여자로 ‘내일이면…’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갖는 것은 비단 뮤지컬에 등장하는 노래 제목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별의미 없이 지나칠 수도 있는 이들 과거가 내게는 하나하나 인생을 모두 걸 만한 중요한 일들이었다.

1988년 롯데월드 뮤지컬단에 입단해 이듬해 첫 출연작인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내가 맡은 배역은 눈에 띄지 않는 단역이었다. 이름도 없는 아가씨 6번. 대사가 “가자! 아들레이드”라는 딱 한 마디뿐이었지만, 밤을 새우며 외우고 또 외웠다.

그 다음 작품 ‘가스펠’에서 나는 주인공 조엔 조나스 역에 캐스팅됐다. 경력이라곤 뮤지컬 단역이 전부인 내가 두 번째 작품에서 여주인공을 맡을 수 있었던 건 행운이 따랐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맡은 선배가 갑자기 사정이 생겨 출연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 선배가 연습하는 걸 혼자 따라하며 연습해 놓은 터에 대사를 전부 외우고 있는 배우는 나뿐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이틀 전에 꿈같은 사건이 생긴 것이다.

운명처럼 여주인공이 된 이 작품의 무대에 오르기 전날 밤, 나는 제발 하루만이라도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One more day’를 염원했다.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막을 올렸던 이 작품은 운 좋게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하루만 더 주어졌더라면 더 완벽한 연기와 노래를 보여줄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모두 18개의 작품을 해 오면서 단역을 맡은 것은 데뷔 작품뿐이다. 하지만 내가 잘해서라고 생각한 적은 결코 한번도 없다. 그저 ‘내일이면 난 또다시 새로운 사람으로 사는 거야’ 하는 생각에 작품마다 그 인물에 빠져들었을 뿐이다. ‘내일이면…’이라는 것은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했을 때만 내일이 존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 내일이면 나는 다시 무대에 오른다. 거의 1년을 준비해온 ‘토요일 밤의 열기’에서 여주인공 스테파니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스테파니는 열정적인 춤과 걸출한 가창력을 겸비한 매력적인 여인이다. 지금까지 출연한 모든 작품이 ‘내 아이’ 같지만 이번 작품은 스태프와 호흡이 잘 맞아 더 큰 기대를 갖고 있다.

▼최선 다할 때에만 ‘내일’존재 ▼

나는 뮤지컬 아닌 다른 일에 에너지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 지난 16년 동안 연평균 1편 안팎의 작품에 출연한 것도 다작을 하지 않고 한 작품에만 몰두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나의 꿈은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될 때까지 무대에 서는 ‘평생 뮤지컬 배우’로 남는 것이다. “One day more!”

▼약력 ▼

△1969년 생 △서울 영파여고 졸업(1988) △‘아가씨와 건달들’(1989) ‘카바레’ ‘갬블러’(2002) ‘토요일 밤의 열기’(2003) 등에 출연 △한국뮤지컬 대상 인기스타상(1997) 여우주연상(2001) 등 수상 △태교음반 ‘내 안의 작은 천사’ 발표(1999)

최정원 뮤지컬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