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오른쪽)이 아르헨티나의 에스테반 캄비아소의 태클을 피하며 공격에 나서고 있다.
‘졌지만 잘 싸웠다.’
한국축구가 세계 최강 아르헨티나를 맞아 대등한 경기를 벌인 끝에 0-1로 아쉽게 패했다.
한국은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친선경기에서 철저한 압박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아르헨티나의 공격력을 무디게 했지만 전반 43분 하비에르 사비올라에게 허용한 한 골을 만회하지 못해 0-1로 패했다.
한국은 이로써 8일 우루과이전 패배(0-2)에 이어 2연패를 당했고 아르헨티나와의 역대 전적에서도 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의 첫 맞대결(1-3패) 이후 2전 전패를 기록했다.
한국 VS 아르헨티나 생생화보
반면 지난해 월드컵 16강 진출에 실패했던 아르헨티나는 월드컵 이후 8경기에서 7승1패를 기록했다.
이날 한국선수들의 움직임은 무기력했던 사흘 전 우루과이전과는 달랐다. 공에 대한 집착력이 강해졌고 손발도 맞았다.
전반 한국의 작전은 철저한 압박을 앞세운 자물쇠 수비.
움베르토 쿠엘류 감독은 고집하던 ‘포백’ 대신 지난해 월드컵 당시 한국팀이 활용했던 ‘3-4-3’ 포메이션을 처음 들고 나왔다. ‘조병국-유상철-김태영’의 스리백을 중심으로 상황에 따라 미드필더들까지 수비에 가담해 때로는 7명이 수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위의 강팀 아르헨티나는 한순간의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한국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며 틈을 엿보던 아르헨티나는 전반 43분 오른쪽 코너 부근을 파고들던 하비에르 사네티가 골문 앞으로 깊숙이 찔러준 공을 문전으로 쇄도하던 ‘아르헨티나의 떠오르는 별’ 사비올라가 오른발 슛으로 골문을 열어젖혔다.
한국은 후반 들어 이을용과 송종국을 빼고 왕정현 이기형을 투입하며 수비를 보강한 뒤 총공세에 나섰지만 역시 골 결정력이 문제였다.
후반 3분 이천수가 골 지역 중앙에서 골문 앞으로 절묘한 땅볼 패스를 찔러 넣었지만 유상철이 미처 발을 대기도 전에 아르헨티나 카발레로 골키퍼가 쳐냈고, 후반 37분 조재진의 슛과 경기 종료 직전 유상철의 헤딩슛도 골대를 벗어나거나 골키퍼의 품에 안겼다.
■양팀 감독의 말
○ 움베르토 쿠엘류 한국 대표팀 감독=만족스러운 경기였다. 미드필드부터 강하게 압박하라고 했는데 선수들이 잘 따라줬다. 세계 최강 아르헨티니와 대등한 경기를 했다는 게 성과다. 다만 네 번의 골 찬스를 한번도 살리지 못한 것은 아쉽다. 안정환은 부상선수가 많아 교체할 수 없었다. 포백에서 스리백으로 바꿨는데 선수들이 잘 이해하고 따라줬다. 이제 한국 선수들을 파악했으니 다음 단계에서는 경기력을 향상시켜 이기는 경기를 펼치겠다.
○ 마르셀로 비엘사 아르헨티나 감독=우리 선수들이 좋은 팀워크를 보여줬다. 한두 골 더 넣을 수 있었는데 아쉽다. 우리가 일본을 4-1로 대파해서인지 한국이 너무 수비 위주로 나왔다. 일본보다 한국을 상대하는 게 훨씬 힘들었다. 한국의 반격이 매서웠는데 우리 수비가 잘 막아줬다. 한국 선수 중에는 이천수와 유상철이 돋보였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쿠엘류가 안정환을 외면한 까닭은…
대한축구협회의 과욕에 대한 반발일까.
11일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은 6만2000여 관중은 후반 중반 이후 ‘안정환’을 연호했다. 그러나 움베르토 쿠엘류 감독은 후반 모두 4명의 선수를 교체하면서도 끝내 안정환(27)을 투입하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일본전 결승골의 주인공 안정환은 축구협회가 국방부에 특별 요청해 군사훈련까지 중단한 채 10일 대표팀에 합류시킨 선수. 그런데도 쿠엘류 감독이 안정환을 외면한 이유는 뭘까.
쿠엘류 감독은 경기 후 “부상선수들이 많아 안정환을 투입할 기회가 없었다”고 했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진짜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첫째, 자신과 한마디 상의 없이 안정환을 합류시킨 축구협회에 대한 반발. 당초 축구협회는 쿠엘류 감독의 요청으로 안정환을 합류시킨다고 발표했지만 큐엘류 감독은 “나는 안정환의 합류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두 번째는 안정환이 그동안의 군사훈련으로 뛸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으리라는 점. 경기 전날 갑자기 대표팀에 합류한 안정환은 “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난감하다”고 밝혔다. 여기에 올여름 유럽진출을 목표로 삼은 안정환으로선 부상이 우려되는 경기에 굳이 출전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결국 무리하게 안정환을 불러들인 축구협회만 우스운 꼴이 된 셈이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