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들어 대통령과 집권여당간에 자유무역협정(FTA)을 놓고 손발이 안 맞는다. 거센 정치적 공세 속에서 그나마 방일 성과로 내세우는 것이 한일 FTA다. 일부에서는 한중일 3국간 경제통합을 이야기하지만 경제력 격차 등을 고려할 때 먼저 일본과 손을 잡고 중국을 불러들이는 것이 바른 순서다. 이런 면에서 이번 방일을 계기로 동북아 경제 중심을 위한 큰 걸음을 내디뎠다고 볼 수 있다.
▼한-칠레협정 표류 ‘신인도’ 타격 ▼
그러나 FTA 협상에는 빛과 그림자가 교차한다. 화려한 외교적 순간은 잠깐이고 남은 집권 기간 내내 이 FTA 협상은 현 정권을 짓누를 것이다. 한일간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개방으로 손해를 보는 계층이 누구인가’가 드러난다. 이번에는 사과 배 정도가 아니라 기계 전자산업 등에서 어지간한 중소기업은 거의 다 영향권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노조와 중소기업이 정치적으로 들고 일어날 것이 자명하다.
이미 농민단체는 ‘한-칠레 FTA 국회비준 결사반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6월 초 여의도 집회를 시작으로 기세가 등등하다. 국회의원 140여명도 비준 반대에 서명했다. 이에 발맞춰 엊그제 민주당은 한-칠레 FTA 비준을 올 가을 국회로 미루었다. 그 이유는 농민피해대책 미흡이다. 정말 한심한 이유다. 정치권은 협상이 진행되던 지난 4년간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한-칠레 FTA 이행법은 이번 임시국회에 상정되어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국가신뢰도와 직결된다. 세계적으로 FTA 협정 타결 후 국내 비준이 거부당한 예는 없었다. 국내 비준이 표류하면 칠레는 물론 어느 정부나 외국 투자기업도 한국 정부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통상 문제를 넘어 정부가 국정 어젠다로 내세우는 ‘동북아 허브’의 걸림돌로 연결된다. 아울러 이 현안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점점 크게 정치이슈화하고 국회 비준시 더 큰 보상을 해줘야 한다. 더욱이 내년 총선을 눈앞에 둔 가을 국회쯤이면 의원들은 ‘농민 표밭’에 거의 제정신을 못 차릴 것이다. 지금 농민단체가 내세우는 명분은 비준 반대지만 실제 목적은 보다 많은 보상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세금이 정치적 동기로 특정 집단의 피해 보상에 과도하게 쓰여선 안 된다. 이는 앞으로 있을 일본과의 FTA에서 노동자, 중소기업 보상의 선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국회의 보호주의에 맞선 ‘대통령의 자유주의’라는 말이 있다. 통상에 관한 한 그래도 대통령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이번 국내 비준은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FTA에 대한 반대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개방의 경제적 효과를 설명하여 FTA를 지지하는 국민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다.
1993년 여름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국내 비준 문제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여당인 민주당은 물론 그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노조, 중산층이 반대하고 여기에 환경단체까지 가세하였다. 당시 정치평론가는 NAFTA 국내비준 때문에 그가 재선에 실패할 것이라고 점쳤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은 리더십으로 결국 그해 상·하원의 비준을 받아냈다. 백악관에 ‘NAFTA-A팀’을 만들어 의회와 끊임없이 막후 협상을 하고 대통령이 직접 NAFTA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설득했다. 이 같은 클린턴 대통령의 노력에 힘을 실어준 것이 재계였다. 눈치만 보며 무임승차하려는 지금의 우리 재계와는 달랐다. 미 기업은 공개적으로 NAFTA를 반대하는 의원에게 정치 헌금을 적게 하며 대통령을 도왔다.
▼ 농민피해대책 4년간 무엇 했나 ▼
한-칠레 FTA가 하루빨리 국내 비준을 통과해야만 길게 보아 현 정부의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다. 이번에 국내 비준을 못 받으면 현실적으로 가을 국회 비준도 힘들다. 이렇게 되면 집권 후반기는 쌀 시장 개방과 도하개발어젠다, 한일 FTA에 대한 이해집단의 엄청난 반발과 맞물려 국정 운영이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다. 6월 국민과의 대화를 즐기는 우리 대통령의 ‘FTA 리더십’에 기대를 걸어본다.
안세영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교수 syahn@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