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의 저자인 아툴 가완디는 의사들이 환자들의 욕구불만과 호소를 청취해 치료 및 진단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하지만 의사 몫의 결정까지 환자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의학드라마 ‘ER(응급실)’.동아일보 자료사진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366쪽 1만5000원 소소
23세인 엘리노어는 왼쪽 다리가 벌겋게 부은 채 병원을 찾았다. 봉와직염(피부염의 일종)처럼 보였다. 그러나 외과 레지던트 가완디는 괴사성 근막염의 가능성을 머리에서 떨쳐낼 수 없었다. 이른바 ‘살 파먹는 박테리아’가 침입한 경우로, 다리를 자르지 않으면 생명까지 잃게 된다.
정확한 병명을 알아내려면 살을 떼어 조직검사를 해야 하지만 그 흉터는 평생 없어지지 않는다. 건강한 젊은이가 괴사성 근막염에 걸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엘리노어는 검사를 하지 않겠단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의 원제는 ‘합병증: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외과의의 노트’(Complication:
A Surgeon's Note on an Imperfect Science)다. 불완전한 과학이란 두 말할 나위 없이 ‘현대의학’을 말한다. ‘합병증’을 뜻하는 ‘Complication’에서는 ‘정확한 판단을 요구하는 복잡한 상황들’이라는 뜻이 읽혀진다.
컴퓨터와 생명공학이 접목된 첨단의학은 수많은 기적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검사 및 치료장비가 발전한 오늘날에도 결정은 거의 의사 한 사람에 의존한다. 저자는 ‘오류에 항상 노출돼 있고’ ‘여러 가능성 사이에서 목숨 건 줄타기를 해야 하는’ 병원 현장을 풍부한 사례와 함께 소개한다.
여러 예화는 의학드라마 ‘ER(응급실)’ 못지않게 흥미롭다. 혈관병 환자가 병원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비타민 K 투여로 혈전(피떡)이 생겨 동맥을 막은 듯했다. 처방을 내린 의사는 사색이 됐지만, 부검 결과 동맥류(動脈瘤)가 파열돼 혈관에 구멍이 난 것이 사인이었다. 옛날 X선 사진을 찾아보니 동맥류의 기미가 확인됐다.
환부의 반대편 발이나 무릎을 수술하는 일은 종종 신문 사회면을 장식한다. 미국에서도 이런 사례는 98년 ‘사인펜으로 미리 수술할 부위에 표시를 한다’는 규칙이 생기고서야 줄기 시작했다. 과학정신으로 무장한 의사들도 13일의 금요일 근무를 진지하게 피한다는 것, 신경과 전문의가 자신의 안면홍조 때문에 학술발표장에서 도망간 일화 등도 사뭇 흥미롭다.
저자의 초점은 의료계의 세태에 대한 ‘고발’이 아니다. 의학이란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복잡계의 과학’이며, 윤리적 제도적인 고려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 예를 들자면 수련의들이 수많은 수술을 담당한다. 숙련된 의사만 수술을 맡는다면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젊은 의사들이 기술을 습득할 기회는 박탈된다. 환자는 어느 정도 ‘실습 대상’이지만, 그 적정한 범위와 한계는 논의된 바가 없다는 것.
기사 서두에 등장한 엘리노어는 의사의 설득 끝에 조직검사를 받고 ‘살 파먹는 박테리아’ 감염을 확인했다. 다행히 고압산소요법 등 실험적인 시도로 다리 절단을 막을 수 있었다. 저자는 ‘환자의 결정권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의사가 결정을 환자에게 미루는 것은 의료분쟁을 회피하는 수단에 불과할 수도 있다.
때맞춰 핵전쟁방지 국제의사회 명예회장이자 8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심장내과 전문의 버나드 라운의 ‘치유의 예술을 찾아서’(몸과마음)도 번역 출간됐다. 역시 수많은 임상 예화를 인용한 이 책에서 저자는 오늘날 의사들이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해 환자와의 유대감을 상실해가는 세태를 비판한다. 환자에게 신뢰감을 주고, 치유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것이 의사의 기본적인 책무이며 이를 통해 실제로 수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