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여성 김모씨(41·서울시 종로구 평창동)는 2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살면서 둘째를 가졌을 때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기만 하다.
임신 34주째에 심한 입덧과 두통, 그리고 부종 때문에 병원을 찾아가 혈압검사를 받아보니 무려 150∼200mmHg로 나왔다. 당장 입원 치료를 받으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일을 하다가 결국 심한 두통 때문에 병원에 실려와 임신 9개월에 제왕절개로 출산했다. 한 달 만에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온 김씨는 이때서야 자신이 ‘임신 고혈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모씨(38·주부·서울 서초구 서초동)는 개인병원에서 임신 24주 혈당검사에서 혈당이 높아 ‘임신 당뇨병’으로 진단받았다. 병원에서는 식이요법으로 당을 조절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제대로 혈당을 조절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최씨는 임신 39주에 무려 4.5kg이나 되는 거대아를 제왕절개로 겨우 낳을 수 있었다.
최근 임신 중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과 같은 성인병에 걸려 고생하는 산모가 늘고 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는 추세에다 늦둥이 출산 등도 많아지기 때문.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김종화 교수는 “임신 당뇨병은 35세 이상의 고령 임신부가 젊은 연령의 임신부에 비해 약 2배, 임신성 고혈압은 2∼4배가량 증가한다”고 말했다.
▽임신 성인병의 특징=임신 때 생긴 당뇨나 고혈압은 아기를 낳으면서 정상 혈당과 혈압으로 되돌아온다.
임신 성인병의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태반에서 나오는 각종 호르몬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전적인 소인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신 중 혈압이 높아지면 콩팥에 손상을 주게 돼 단백뇨가 나오며 얼굴 손 다리가 심하게 붓는다. 또 폐에 물이 차 호흡곤란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더구나 아기는 엄마로부터 제대로 영양분을 공급을 못 받게 돼 2.5kg 이하의 저체중아로 태어나거나 발육부진으로 사망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임신 당뇨병은 산모에게는 특별한 증세가 없지만 혈당이 과도하게 높아져 ‘거대 태아’를 만든다. 엄마의 혈당이 태아의 몸 속에 지방으로 저장되기 때문. ‘거대 태아’는 자연 분만이 어려워 제왕절개를 받을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
또 아기는 높은 혈당을 공급받다가 모체와 분리된 이후 갑자기 저혈당에 빠져 사망할 수 있으며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면 당뇨병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임신 중 당뇨병과 고혈압 중엔 어느 것이 더 심각할까. 단기적으로는 임신성 고혈압이 더 위험하다. 국내 산모 사망 원인 중 임신성 고혈압은 분만 후 출혈이나 폐혈관이 막히는 색전증과 더불어 3대 사망 원인에 속하기 때문.
반면 임신 당뇨병은 5∼10년 사이 당뇨병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63%나 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임신성 당뇨병이 임신성 고혈압보다 후유증이 심하다.
▽임신 성인병의 진단=임신 전에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임신 당뇨병은 유전성이 강해 엄마가 임신 당뇨병이 있었다면 딸이 같은 병이 생길 가능성은 40% 정도. 대개 임신부는 임신 24∼28주 당뇨병 검사를 받는다.
임신 고혈압은 임신 30주 이후에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갑자기 심하게 붓거나 심한 두통으로 병원을 찾아와 우연히 혈압을 쟀을때 진단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고혈압이 외에도 단백뇨 부종이 나타나며 심하면 경련이 생기기도 한다.
▽분만이 곧 치료=임신 당뇨병은 몸무게에 맞는 칼로리 섭취와 함께 운동을 1주 3일 하루 45분 가량 하는 것이 좋다. 비만이 아닌 경우 체중 kg당 하루 30Cal가 적당한 섭취량이다.
비만인 경우는 체중 kg당 하루 25Cal를 섭취한다. 운동이 어렵다면 식사 직후 20∼30분 정도 걷는 것도 좋다. 운동이나 식이조절로 혈당 조절이 되지 않으면 인슐린 치료를 시작한다.
혈당 조절만 잘 되면 대개 아기는 정상 체중을 유지하며 정상 분만도 가능하다.
임신 고혈압의 치료는 결국 분만이다. 혈압이 그렇게 높지 않고 태아가 어린 경우는 자궁 내에서 수주일 동안 더 임신을 지속시킬 수 있다. 이때는 초음파를 통해서 태아 검사를 자주 한다.
입원 뒤에도 호전되지 않거나 악화되는 고혈압이면 임신모 또는 태아의 건강을 위해 일찍 분만해야 한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
▼비만-식생활변화 당뇨 유발▼
임신중 정기검사는 필수다. 한 병원에서 산모가 초음파검사를 받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35세 이상의 고령 임신은 산모와 태아 모두에게 위험하므로 임신 중에 진찰과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는 것이 좋다.
임신 당뇨병을 경험한 여성은 분만 후 당뇨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으므로 분만 6주가 지나면 다시 한번 검사를 받아야 한다. 만약 검사 결과 정상이라도 3년마다 당뇨병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최근엔 비만하거나 갑작스러운 식생활 변화도 임신 당뇨병에 걸릴 확률을 높게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만한 뒤 체중이 3.5kg 이상 늘면 당뇨 위험이 두 배나 증가하기 때문에 체중 관리에 신경을 쓴다.
한편 임신 당뇨병 전문가인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캘리포니아대 의대 산부인과 토머스 앨런 뷰캐넌 박사는 “임신 당뇨는 아시아인이 유럽,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이주했을 때 그곳 사람보다 2∼3배 높게 나타난다”며 “이는 채식 위주의 식습관에서 기름진 음식으로의 생활 변화가 주요인”이라고 말했다.
뷰캐넌 박사는 “임신 때 당뇨를 경험한 여성이 당뇨병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체중 조절 외에 혈당 강하제인 글리타존 계열의 약물치료도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임신 고혈압은 분만 후 대개 급속하게 정상으로 돌아온다. 고혈압 약은 복용할 필요가 없다. 최근 임신성 고혈압을 예방하기 위해 칼슘이나 비타민C, E 등을 먹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논문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논란 중이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