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노무현 대통령은 “언제까지 과거에 연연할 수는 없다”는 말을 남기고 서울에서 일본으로 향했다. ‘과거에 눈을 감는 자는 미래를 그르치게 한다’는 독일 바이츠제커 대통령의 말과는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미래 지향’을 강조하지만, 대통령이 일부러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미래를 향해 걷고 있다. 노 대통령은 왜 ‘과거’와 ‘미래’를 대립적으로 파악하는 것일까. ‘과거’는 물론 ‘미래’도 중요하며, ‘미래’는 ‘과거’에 의해 규정된다. 중학생이라도 아는 당연한 사실을 대한민국 대통령은 왜 왜곡하려 하는 것일까.
우리 일본 시민 단체는 올 2월 차기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및 인권유린에 대해 피해국 대통령으로서 명확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하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피해자 개인이 일본에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나무라지 않지만, 외교적으로는 돕지 않는다는 방침을 고수해 우리를 당혹케 한다. 우리가 늘 괴롭게 여기는 일은 일본의 외무성이나 여당 의원과 이야기할 때 “한국 정부는 아무 말도 없다. 그 문제는 끝난 것 아니냐”는 답변이 돌아오는 것이다. 아마 한국의 피해자와 유족들은 우리 이상으로 괴로울 것이다.
일본 천황이 주최한 궁중 만찬회에서 노 대통령은 월드컵 공동 개최의 성과를 칭찬했다. 그러나 축구의 성공으로 한국 피해자 문제가 해소된 것도, 아픔이 경감된 것도 아니다. 하네다와 김포공항간 전세 비행기가 운항돼도 피해자의 아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노 대통령은 방일 전 한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에 자극적인 말을 하는 것은 효과적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발을 밟힌 아픔은 밟힌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파트너십’인지 묻고 싶다. 대통령은 가만히 있으면 일본 쪽에서 자발적으로 사죄와 정책 변경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는 걸까. TV에 비친 황궁 복도를 천황과 나란히 기쁜 듯 걷는 대통령의 모습은 2차대전 후에 태어났으며 대통령보다 젊은 내 눈으로 보아도 크게 위화감이 있었다.
얼마 전에는 부산지방법원이 요구한 일한청구권 협정체결 교섭시의 기록 공개를 한국 외교통상부가 일본 정부의 요청에 따라 거부했다고 한다. 정치적 압력에 의해 38년 이전의 ‘역사’를 봉인하고자 하는 태도는 ‘역사’에 성실한 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일본 정부에 영합해 단기적 외교에서 점수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역사’와 ‘인권’에 손상을 준 실점은 무겁고 심각하다. 또 한국 정상외교의 품위를 깎아내렸다고도 할 수 있다.
필자는 일제강점기 전쟁피해자 보상을 한일 양국간의 이해관계나 국익만을 생각해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보편적 견지에서 전쟁과 억압으로 인한 피해자의 인권 회복에 피해국과 가해국이 협력해 주었으면 하는, 그야말로 ‘미래지향’적 요청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진정으로 이 과제에 힘을 쏟는다면 그 성과는 동북아뿐 아니라 21세기 세계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재산이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의 맹성(猛省)과 피해자의 인권 회복을 위한 구체적 노력을 촉구한다.
아리미쓰 겐 일본 전후보상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