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에 ‘도날드 닭’을 연재했던 만화가 이우일씨가 ‘러브 북:버니의 사랑이야기’라는 만화책을 펴냈다. 박주일기자
“닭살돋는 사랑이야기는 여전히 혐오해요. 하지만 저도 따뜻한 이야기에 관심있어요. 신파조 만화나 드라마는 싫고.”
웃음 가득한 얼굴과 저음의 목소리로 189cm의 키에서 나오는 위압감을 금방 잊게 만드는 만화가 이우일씨(34). 그는 최근 사랑과 관련된 94개의 격언·속담·문구에 그림을 붙여 ‘러브 북: 버니의 사랑이야기’(마음산책)를 냈다.
이 책이 나오자 많은 지인들이 “이런 것도 내냐”고 말했다. 그들은 삐딱함과 썰렁함이 뒤섞인 독특한 분위기의 ‘도날드 닭’(1998년1월∼1999년3월·동아일보 연재)이나 기발한 성적 유머로 무장한 ‘존나깨군’(1999년7월∼2000년·딴지일보 연재)을 기억하고 그런 평을 말했을 듯.
“‘러브 북’의 표지는 뽀송뽀송하죠. 하지만 ‘그림과 글을 같이 보면 사랑에 대한 시니컬한 시각이 드러난다’고 말하더라고요.”
책에 실린 문구들은 대부분 이씨가 직접 골랐다.
“아이디어만 떠오르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리 그리기 때문에 실제 작업 기간은 한 달밖에 안 돼요. 힘든 건 하나의 문구만 달랑 앞에 두고 ‘이걸 어떻게 시각화하나’하는 고민이죠.”
만화가 이우일씨의 신간 ‘러브 북’ 중 자기 가족과 ‘버니’를 함께 그린 그림. 그림제공 마음산책
그런 고민 때문인지, 그는 ‘인생은 기쁨으로 충만한 비극이다’(미국의 소설가 버나드 맬러머드)라는 글을 표현한 ‘햄릿’의 오필리어 그림을 가장 좋아해 작업실 책상 위에도 붙였다. 이외에 ‘살아있는 동안에 정말 곤란한 것은 예쁜 여자가 너무 많다는 것, 게다가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발리모어)에 붙인 자기 가족 그림을 꼽았다.
작은 토끼 ‘버니’는 거의 모든 페이지에 등장해 인생의 희로애락에 휘둘리는 인간들을 가만히 주시한다.
“만화적 재미와 책을 관류하는 컨셉트를 조화시키기 위해 그려넣기 시작한 거예요. 곰과 애벌레 등 다른 캐릭터도 있는데 버니는 ‘내가 그렸지만 참 마음에 든다’는 생각에 자꾸 다시 보게 되더라고요.” (웃음)
예쁘지 않게 막 그린 듯한 귀여운 그림들과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하고 궁금하게 만드는 ‘버니’의 무표정 때문인지, 이 책의 ‘사랑’은 더욱 담백한 분위기로 다가온다.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