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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서예가 故김광업 전시회…구름가듯 물흐르듯

입력 | 2003-06-17 18:32:00

'천상천하유아독존' 사진제공 예술의 전당


한국의 근 현대 서단(書團)의 역사는 기법 중심의 도제교육과 공모전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예가 운여 김광업(雲如 金廣業·1906∼1976)은 이런 흐름에 구애받지 않았던 서예가였다. 기존 서단에 적극적으로 참여도, 저항도 하지 않은 운여는 굳이 구분하면 제3자적 입장에서 ‘마이 웨이’를 고수한 서예가라고 할 수 있다.

애초부터 그는 글씨를 써서 세속의 부와 명예를 얻으려 하지 않았다. 서예외에 다른 직업(안과 의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는 태생적으로 글씨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존재였다.

서울 예술의 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20일부터 열리는 '운여 김광업의 문자반야(文字般若)의 세계' 전은 서예, 전각, 그림 250여점을 통해 그의 예술 세계를 전면적으로 재조명한다.

전시 작품은 개인 소장 100여점,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 150여점 등으로 구성된다. 작품들은 ‘은(殷)·주(周)시대 금문(金文)과 갑골문(甲骨文)’ ‘진(秦)·한(漢)시대 와전문’ ‘해서와 행, 초서’ ‘대자서(大字書)와 파체서(破體書)’ ‘그림·서화감식·교유관계’ 등으로 나뉜다. 대추나무, 대나무 뿌리, 돌 등 재료에 구애받고 자유자재로 글자를 새겨 넣은 전각 작품 50여점도 선보인다.

그는 평생 구름처럼 떠돌며 살았다. 평양, 부산, 서울,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식민지와 전쟁, 근대화와 유신독재 등을 온 몸으로 겪었다.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1·4후퇴 당시 부산에 내려와 안과를 열고 정착했다. 이어 ‘동명서화원’을 개설해 부산 서예의 터전을 일군 후 서울로 올라왔다. 67세 때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71세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운여는 기독교인이었으나, 선승들과 교유하면서 종교의 경계도 넘나들었다. 그는 이같은 역정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서예로 표현했다.

이동국 큐레이터는 ”운여는 평생 칼(전각)과 붓을 쥐고 살았지만 글씨에 얽매이거나 노예가 되지 않고 글씨를 가지고 노는 경지에 있었다“고 소개했다. 운여의 서예전은 7월13일까지 계속된다. 02-580-1511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