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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연구원 “한국 산업경쟁력 붕괴단계”

입력 | 2003-06-17 18:32:00


한국의 기업 및 산업 경쟁력이 ‘붕괴 단계에 진입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세계 경기가 크게 위축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크게 줄이면서 성장잠재력마저 크게 훼손됐기 때문이다

전경련 유관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은 17일 ‘한국경제의 실상과 현안정책 과제’라는 보고서에서 이같이 진단한 뒤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는데도 한국 경제의 취약성 때문에 선진국 경제권에 진입하거나 동북아 경제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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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 지표도 급랭하고 있다.

산업생산증가율은 작년 4·4분기(10∼12월) 9.5%에서 올 4월 1%대로 급락했고, 2·4분기(4∼6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4분기(1∼3월)에 이어 전 분기 대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침체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말로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 보고서가 지적한 한국경제의 가장 큰 취약점은 ‘설비투자 부진에 따른 성장잠재력 하락’이다.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1·4분기에 3.4% 감소한 데 이어 4월에도 4.2% 감소했다.

실물 경제를 중시하는 전문가들은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는 구호만 외칠 뿐 각종 규제, 친(親)노조 성향 정책 등으로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면서 “실물 경제 기반이 자칫 허물어지면 한국은 외환위기보다 더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실물 경제의 취약성=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경제는 외환 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에 빠져있다. 산업생산 침체, 설비투자 부진, 제조업생산능력 감소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실물 지표의 추락으로 GDP는 1·4분기에 이어 2·4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 전체의 구매력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96년부터 지난해까지 GDP 성장률은 연평균 4.8%였지만 국내총소득(GNI)은 연평균 2.3%의 성장에 그치고 있다.

▽기업 경쟁력 악화=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형식적인 부채비율 축소와 인력 감축 위주의 기업 구조조정에만 치중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기업 경쟁력 강화는 뒷전이었다. 기술 혁신과 설비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경쟁력이 붕괴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LG투자증권 박윤수(朴允守) 상무도 “한국 기업들의 이익은 최근 크게 증가했지만 매출증가률은 이에 못 미치는 상황”이라며 “이는 구조조정으로 금융비용이 줄어 이익이 늘었을 뿐 성장 잠재력이 커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시장질서를 다시 세워야=현오석(玄旿錫) 무역연구소소장은 “새 정부 들어 일관되고 명료한 시장경제체제가 무너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사문제에서의 원칙 상실,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지연, 스크린쿼터 문제 등에서 글로벌화의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며 이는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에 악영향을 준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좌승희 원장은 “이해 집단의 제몫 챙기기가 치열해질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정치가들의 인기영합(포퓰리즘)적 정책”이라며 “과거 일본이나 영국의 예를 보면 나눠먹는 식의 평등주의 정책이 득세하면 경제가 망가진다”고 지적했다.

좌 원장은 또 “저성장 시기에는 줄어든 파이를 서로 차지하려는 집단끼리의 갈등이 심화된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지속 성장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성장률이 2%포인트 떨어지면 국민총생산(GNP)은 12조원, 약 13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줄어드는 만큼 아직은 성장을 위한 거시정책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