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까지 송두환 특별검사팀에 소환됐으니 이제 대북송금사건과 관련한 조사대상자는 사실상 김대중 전 대통령밖에 남지 않았다. DJ의 통치행위론은 통치권자인 자신의 결단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대북접촉이 개시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므로 수사상식만으로 볼 때는 DJ에 대한 조사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대립하는 것은 국민의 엇갈린 시각 때문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DJ 조사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나 한나라당이 이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나 모두 지지 세력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특검수사가 착수된 순간 이 사건은 정치나 국민감정의 문제를 떠나 법 집행의 문제가 됐으므로 법 논리가 우선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조사로 실체적 진실이 충분히 규명됐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DJ 조사는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특검수사마저 의혹의 찌꺼기를 남긴다면, 그래서 소모적인 정쟁이 되풀이된다면 그동안 특검팀의 노력은 무의미해지고 국력만 이중삼중으로 낭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DJ 본인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으로서도 두고두고 짐이 될 것이다.
지난 3년간의 갈등을 봉합하고 앞으로의 분열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이 조사를 원하면 DJ가 응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DJ가 항상 강조해온 ‘역사’ 앞에서 당당한 태도일 뿐만 아니라 정상회담을 둘러싼 의혹으로 혼란스러워하는 국민에 대한 전직 국가원수의 예의이기도 하다. 다만 이 사건의 성격이나 DJ의 고령과 건강 등을 감안해 소환조사 대신 방문조사 같은 방법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조사에 관한 모든 판단은 특검에 맡겨야 한다. 수사기간 연장 여부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정치권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권이 진정 나라를 위한다면 특검수사보다는 수사종료 이후에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