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를 구제하기 위한 외국인 고용허가제 법안 제정이 사실상 무산됨에 따라 강제 출국 위기에 처한 외국인 근로자들과 이들을 고용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술렁이고 있다.
2만여명의 외국인이 일하고 있는 인천의 남동공단 사출성형업체 P산업 총무과장 박모씨(42)는 17일 “3월에도 외국인 근로자들이 단속을 피해 집단 잠적하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며 “‘3D’ 업종은 외국인이 없으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8월 말로 강제 출국이 예정된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 20여만명의 처리문제가 사회 현안으로 떠올랐다.
▽불법체류자 왜 많아졌나=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 연수 추천단체 및 해외 송출기관이 산업연수생제 운영을 독점하면서 생겨난 송출비리가 불법체류자를 양산한 원인이라는 게 노동부의 분석이다.
외국인들은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국내에 들어오기 위해 1인당 357만∼864만원의 송출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한 푼이라도 돈을 많이 주는 사업장으로 이탈할 수밖에 없다는 것.
노동부 관계자는 “사람이 없어 기계를 못 돌리는 영세 중소기업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외국인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며 “하루 빨리 ‘본전’을 뽑으려는 외국인과 중소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불법체류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강제추방 가능할까=외국인 출입국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법무부는 당초 3월 말이었던 불법체류자 출국시한을 고용허가제 도입을 조건으로 5개월 연장해준 만큼 또 다시 강제출국 시한을 연장해줄 수는 없다는 입장.
법무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해결책도 없이 자꾸 유예해주면 공신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17일 오후 노동부와 ‘외국인 불법체류자 대책회의’를 갖고 법안 제정 무산에 따른 후속조치를 논의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편 노동부는 고용허가제 도입이 불가능해졌다고 보고 현재 중소기업청 건설교통부 등 산업연수생제를 관리 감독하고 있는 5개 부처의 업무를 노동부로 일원화하는 등 현행 산업연수생제의 문제점을 대대적으로 개선할 계획이다.▽반응=1만여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경기 부천지역의 160여개 중소업체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금형업체 K사 대표 김모씨(42)는 “외국인들을 추방해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 누가 보상하느냐”며 불만을 나타냈다.
부천 외국인노동자의집 이완 상담실장은 “중소기업에 안정적으로 인력을 공급하고 외국인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고용허가제는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부천=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