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19일 구조조정본부 해체와 계열사 독립경영 방침을 발표한 것은 SK글로벌 사태의 원인으로 지적된 ‘재벌 시스템’으로는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정으로 풀이된다.
또 SK그룹이 기업지배구조를 바꾸기로 함에 따라 주요 4대 그룹이 각기 독자적인 지배구조를 갖추게 돼 한국 기업사(史)가 새로운 장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SK그룹 구조본, 30년 만에 해체=SK그룹 구조본은 1974년 고 최종현(崔鍾賢) 회장 시절 ‘경영기획실’로 출범해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구조본으로 전환됐다. 손길승(孫吉丞) 회장이 78년부터 98년까지 20년간 경영기획실장을 맡다가 회장 자리에 오르는 등 SK그룹의 인재양성소이자 그룹 경영의 중심축 역할을 맡아왔다.
SK그룹은 “구조본을 대체할 어떤 기구도 새로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룹 브랜드 관리 등을 위한 그룹 홍보기능 등은 SK㈜와 SK텔레콤 등으로 분산시킨다는 계획.
그러나 구조본은 해체되지만 ‘SK C&C→SK㈜→SK글로벌→SK생명’식으로 이어지는 재벌식 순환출자구조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SK그룹 관계자는 “대주주의 지분이 워낙 낮고 추가 지분 확보용 자금도 없어 당장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할 형편은 못 된다”고 털어놓았다.
비록 구조본은 없어지지만 ‘지분만큼 지배한다’는 원칙은 여전히 지켜지기 힘들어 재벌 시스템을 완전히 털어내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다 ‘이번 결정을 했다’고 발표된 최태원(崔泰源) SK㈜ 회장이 앞으로 느슨해진 그룹에서 어떤 지위로 무슨 역할을 할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는 점도 뒷맛을 남기고 있다.
▽기업지배구조 ‘백가쟁명’ 시대=이날 SK그룹의 결정으로 국내 재계 1위 삼성은 구조본존속, 2위 LG는 지주회사, 3위 SK는 느슨한 네트워크, 4위 현대차는 소그룹 등 4대 그룹이 완전히 차별화된 지배구조를 갖추게 됐다.
LG SK 현대차 등의 지배구조는 ‘재벌개혁의 총수’격인 강철규(姜哲圭) 공정거래위원장이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과 만나 제시했던 지배구조의 세 갈래 개선방안 가운데 하나다. 강 위원장은 △지주회사 체제 △브랜드와 이미지를 공유하는 느슨한 연계체제 △독립기업 분리나 전문업종별 소그룹 분화를 대안으로 내놓은 바 있다.
SK그룹 이노종(李魯鍾) 홍보실장도 이날 “SK그룹이 선택한 ‘느슨한 형태의 커뮤니티(공동체)’는 공정위가 제시한 ‘좋은 지배구조’의 하나”라고 말해 ‘정부를 의식한 결정’이라는 점을 의식적으로 드러냈다.
어쨌거나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구조본을 유지하는 삼성그룹은 신경이 쓰이는 눈치. 삼성그룹 관계자는 “기업지배구조란 효율적 기업활동을 위해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다른 그룹이 내부문제로 지배구조를 바꾼다고 해서 우리까지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흔들 이유가 없다”며 구조본 해체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