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빈’과 ‘007’을 섞은 코믹 첩보영화 ‘쟈니 잉글리쉬’. 사진제공 UIP 코리아
비행기 기내의 단골 상영작이자 명절 때 자주 방영되는 TV 외화 ‘미스터 빈’의 로완 앳킨슨은 한 번 보면 잊어버리기 어려운 캐릭터다.
주름많은 얼굴로 지어내는 온갖 희한한 표정, 작은 체구의 사소한 몸짓만으로도 요란하고 큰 동작의 코미디를 능가하는 웃음을 자아낸다.
‘쟈니 잉글리쉬 (Johnny English)'는 ‘미스터 빈이 007과 만났을 때’와 같은 코믹 첩보영화다. 잦은 실수가 별 일 아니라는 듯 시침떼려다 사소한 일을 눈덩이처럼 부풀리고 마는 ‘미스터 빈’의 캐릭터를 ‘007’의 무대 위로 옮겨 왔다.
영국 첩보국 MI-7의 사무직 쟈니 잉글리쉬 (로완 앳킨슨)는 첩보원을 꿈꾸지만 첩보원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신세다.
임무 수행 도중 사망한 첩보원 001의 장례식장에서 첩보국 요원들이 다 죽자 그는 얼떨결에 첩보원이 되어 001이 수사하던 여왕의 왕관 탈취 음모 조사를 맡는다. 쟈니는 프랑스인 기업가 소바쥬(존 말코비치)가 이 사건의 범인이라는 확신을 갖고 조사를 시작하나 매번 꼬이기만 한다.
영화 도입부 쟈니가 여자에게 자신을 001이라고 소개하는 ‘007’의 패러디 장면부터 코믹한 에피소드들이 들어차 있다. 옷걸이에 코트를 던져 거는 001과 달리 쟈니가 던진 코트는 창 밖으로 나가 버리고, 독침 펜을 갖고 아는 체 하다가 엉뚱하게 국장 비서에게 독침을 쏜다.
쟈니는 침투한 곳이 악당의 사무실인지 옆 쌍둥이 빌딩의 병원인지도 구분도 못하고 근육이완제와 진실의 약을 엉뚱한 이들에게 먹여 해프닝을 빚는다. 대단한 재치와 유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볍게 볼만한 영화다.
실제 ‘007 어나더데이’의 각본에 참여한 닐 퍼비스와 로버트 웨이드가 각본을 써 ‘007’의 분위기도 풍긴다. 후반부로 갈수록 상황이 어이없고 웃음을 쥐어짠다는 인상을 주는 게 흠.
특히 이 영국 영화가 프랑스를 조롱하는 것을 보면 영국의 프랑스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깊은지 실감한다. 소바쥬 역을 맡은 존 말코비치는 ‘R’ 발음이 서투른 프랑스식 영어로 계속 프랑스인을 조롱하며, 영국 땅을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기 위해 영국 왕위를 노리는 악당으로 묘사된다.
감독은 ‘슬라이딩 도어스’를 만들었던 피터 호위트. 올해 4월 영국에서 개봉됐을 때 3주동안 1위를 차지했다.
프랑스에서는 아직 개봉되지 않았다. 전체 관람가. 20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