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싸이더스 HQ
《배우에겐 못생긴 것보다 평범한 얼굴이 더 치명적이다.
악역도 영웅도 맡을 수 없는 애매한 얼굴인데다 요즘같은 개성 시대에는 제 자리를 찾기 어렵다. 차태현(27)은 이같은 통념을 뒤집은 스타다.그리 크지 않은 1m74의 키에 평범한 이목구비. 오죽하면 소속사 싸이더스HQ가 작성한 프로필에 ‘매력포인트: 이마’라고 적혀있을까. 그러나 그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로 전국 5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이래, ‘연애소설’, ‘첫사랑 사수궐기대회’(27일 개봉) 등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주연을 맡았다.
최근 발표한 2집의 타이틀곡 ‘어게인 투 미’도 호응을 얻고 있다. ‘평범한 얼굴’의 그가 이처럼 인기를 얻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 ‘남자 캔디 차태현’
차태현이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맡은 역할은 주로 착해서 구박받는 캐릭터였다. 1999년 MBC ‘해바라기’에서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나온 그는 정신질환자 김정은에게 항상 쥐여 살았다. 2001년 ‘엽기적인 그녀’에서도 터프한 여자 친구에게 주먹질을 당했다. 그러나 극중 차태현은 화가 나서 분통을 터뜨리거나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는다. 언제나 생글생글이다.
이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의 캐릭터와 유사하다. 예쁘지 않은 외모에 고아로 주근깨 투성인 캔디는 하녀였을 때 주인집 딸의 구박을 계속받지만 항상 밝고 명랑하다.
차태현의 어리숙한 사랑은 댓가를 못받을 것 같으나 결국 진심이 받아들여져 성공한다. 출연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2002년 ‘연애소설’에서는 두 여자 주인공의 사랑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차태현은 극중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수그리거나 피하지 않고 마음이 가는대로 몸을 맡긴다”며 “잘나진 않았지만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는 모습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고 말했다.
● 자연스러운 인간
차태현의 간판 이미지는 ‘귀여움’이다. 사회적으로 규범화된 ‘남성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남동생’같은 친근함과 ‘개구쟁이’같은 장난기가 섞인 동안(童顔) 때문이다. 그는 극 중 상대 여자에게 헌신적이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발이 아픈 여자 친구를 위해 운동화와 하이힐을 바꿔 신는다. ‘첫사랑 사수궐기대회’에서 건달 고교생 손태일(차태현)은 첫사랑을 이루기 위해 전국 석차 30만등에서 3000등까지 성적을 올린 뒤 서울대에 들어간다.
이같은 이미지는 여성이 남성에게 ‘상처나 버림받지 않을까’라는 잠재적 두려움을 없애준다. 여성들이 즐겨 읽는 ‘할리퀸 소설’의 주인공처럼 아버지의 큰 보호나 어머니의 무조건적 사랑, 애인의 낭만적 사랑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1990년대 말부터 영화 속 남자주인공의 남성다움이 약화된 것도 차태현 인기와 관련이 깊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석규나 ‘편지’의 박신양 등이 대표적 사례. 이들은 극 중 여성에게 한없이 자상하고 따뜻하다.
영화평론가 주유신씨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는 사회적으로 남성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강요된 남성다움보다 자연스러운 인간다움이 팬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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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태현은 “나는 뭘해도 사람들이 만만하게 본다”며 “그게 내 이미지이고 불만은 없다”고 말했다. 대중문화평론가 김탁환씨(건양대 국문과 교수)는 “댄스가수인데 노래나 춤도 썩 잘하는 편은 못되고, 연기도 자신의 실제 모습과 큰 차이가 없지만 잘하는 것과 잘 못하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자연스러움이 친근감을 준다”고 말했다.
최근 발표한 2집의 타이틀 곡 ‘어게인 투 미’의 단순한 구성은 이런 그의 모습과 닮아 있다. 곡은 전주도 없이 ‘왜 너를 사랑했던 걸까’라는 메인 테마로 곧장 시작한다. 이어 읊조리는 듯한 대목과 메인 테마가 끝날 때 교차 반복된다.
MBC 라디오국 김재희 PD는 “단순 명료한 멜로디와 ‘댄스’라기 보다 ‘율동’에 가까운 몸동작은 누구나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은 친근감을 준다”며 “그가 영화 속에서 보여왔던 이미지와도 서로 통한다”고 말했다.
차태현은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알고 있고 그 범위 안에서 활동한다”며 “앞으로도 억지스럽게 변화를 도모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