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나무껍질로 신비로움을 더하는 백송(白松). 하얀 껍질과 푸른 솔잎이 선명한 대비를 이뤄 더욱 멋진 모습을 자랑한다.
백송은 원산지인 중국에서도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희귀종이다. 국내에도 10여그루가 있을 뿐이다.
그 가운데 서울에만 3그루가 있다.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와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용산구 원효로 용산문화원에 있는 이들 백송은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종로구 통의동에도 백송이 있었으나 1990년 태풍에 의해 쓰러져 고사(枯死)했다.
서울 ‘재동의 백송’. 수령 600여년으로 국내 백송 가운데 최고령이며 가장 멋진 자태를 자랑한다.-이훈구기자
이번 주말 백송의 신비로움을 느껴보고 거기 담겨 있는 역사도 들여다보자.
▽재동의 백송=헌법재판소 경내에 있는 이 나무는 수령 600여년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백송이다. 높이는 15m. 헌법재판소 건물 오른쪽 3m 높이의 축대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당당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면 ‘과연 나무가 이렇게 하얀 색일 수 있는지’ 하고 놀라게 된다. 뽀얀 소나무 껍질과 그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갈색 껍질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추상화를 연상시킨다.
이 백송에는 조선시대 말 흥선대원군에 관한 일화가 전한다. 1860년대 초 대원군이 안동 김씨의 세도를 물리치고 왕정(王政) 복고를 추진할 때 이 백송의 밑동이 유난히 희게 변해 성공을 확신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처럼 백송이 평소보다 희어지면 길조로 여기곤 했다.
또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원통함 때문에 1910년부터 성장이 거의 멈추었다가 광복 이후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백송 주변을 작은 공원처럼 꾸며놓아 가족 나들이하기에 제격이다. 북촌을 찾을 때 꼭 들러볼 만하다.
▽조계사의 백송=수령은 약 500년, 높이는 10m. 조계사 대웅전 동쪽에 있다. 흰색의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재동의 백송에 비해 수세(樹勢)가 빈약하다. 3개의 나뭇가지 가운데 하나가 이미 죽었고 밑동은 썩어서 수술까지 받았다. 최근 대웅전 보수 해체 공사로 인해 나뭇가지가 철제 가림막에 걸린 채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원효로의 백송=수령은 약 500년, 높이는 10m. 용산문화원 뒤뜰에 있다. 이 백송 역시 수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는 등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 나무 옆에는 ‘왜명강화지처(倭明講和之處)’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1593년) 왜군과 명군이 강화조약을 체결한 곳임을 알려주는 비석이다. 전문가들은 당시 중국이 강화조약을 기념하기 위해 백송을 가져와 심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