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캐나다 리자이나대 종교학 교수)
알바니아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마다하고 인도 콜카타 빈민들을 돕는 데 일생을 바친 마더 테레사 수녀가 죽어서 지금 지옥에 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테레사 수녀가 교회를 잘못 선택했기 때문일까? 그리스도교의 어느 복잡한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잘못 이해했기 때문일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성경에 보면 심판의 날 양과 염소를 가르는데 ‘네가 어느 교회에 속했었나’ ‘네가 삼위일체를 제대로 알고 있었는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는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는가’를 기준으로 삼는다고 한다. 이런 기준에 따라 천당에 가는 일이라면 테레사 수녀보다 더 자격이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그가 천당이 아니라 지옥에 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가. 테레사 수녀의 사랑과 자비 때문이다. 사랑이란 남을 내 몸 같이 여기는 것이고 자비란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고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사랑과 자비로 가득했던 테레사 수녀가 어찌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많은 사람을 외면하고 혼자 하늘나라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을 수 있겠는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지옥행을 자원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야말로 뼈 있는 농담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종교 생활을 하는 것은 결국 천당에 가기 위함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마음이라면 나만 천당에 가겠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만은 천당에 가야겠다는 마음이라면 오히려 그 마음 때문에 천당에 갈 수 없을 것이다. 남의 고통을 외면하고 나만 잘 살겠다는 이기적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천당에 갈 자격이 있겠는가.
이번 이라크전쟁에서 유명해진 페르시아만 해안도시 바스라에서 1200년 전에 살았던 이슬람 성녀 라비아의 기도가 생각난다.
“오, 주님, 제가 주님을 섬김이 지옥의 두려움 때문이라면 저를 지옥에서 불살라 주옵시고, 낙원의 소망 때문이라면 저를 낙원에서 쫓아내 주옵소서. 그러나 그것이 주님만을 위한 것이라면 주님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제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종교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