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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기 강정진 거사 "깨달음 얻었다는 선사들은 착각한 도인"

입력 | 2003-06-20 17:37:00

법기 강정진 거사 -사진제공 궁리


“당나라 육조 혜능 이후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선사들은 모두 착각도인입니다. ‘이뭐꼬’ ‘부모가 낳기 전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부모미생전)’ 등도 모조리 죽은 화두입니다.”

최근 서울에서 만난 법기 강정진(法起 姜丁鎭·72) 거사는 현 불교를 송두리째 뒤엎는 파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서울과 부산의 법기선원에서 법문을 하며 수행 지도를 하고 있다(www.bubkisa.or.kr)( 02-878-1843, 051-516-9104).

그는 1990년대 말 무더기 출가한 서울대 출신 스님들의 스승. 이들의 이야기는 지난달 KBS 프로그램 ‘선객(禪客)’을 통해 방송됐다. 그는 비록 재가자(在家者)의 신분이지만 아직도 출가 스님의 수행을 점검해주는 등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지도로 출가한 사람은 서울대생 11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14명.

최근 복간된 저서 ‘영원한 대자유인’(궁리)에서 그는 ‘13세부터 수행을 시작해 33세에 오매일여(寤寐一如·잠자는 동안에도 수행을 계속하는 상태)에 이르렀고 이후 18∼20시간 좌선한 끝에 45세에 돈오견성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한국 불교, 나아가 대승불교가 커다란 오류에 빠져 있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수행은 결국 중생을 부처로 바꾸는 방편입니다. 중생의 24시간은 무기(無記·아무 생각없는 상태)와 번뇌(생각이 일어난 상태)로 이뤄집니다. 하지만 현 불교는 번뇌를 없애라고 할 뿐 무기에 대해선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번뇌를 없애는 수행만 하다보면 무기 상태가 길어지는데 이때 정신이 또렷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실제 무기 상태에 불과하지만 이를 깨달음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혜능 이후 깨달음을 얻은 선사가 없었다는 충격적인 주장은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일까.

“제대로 된 수행을 위해서는 호흡법, 결인법(結印法), 혀를 입천장에 붙이는 법 등을 알아야 하는데 옛날 조사어록이나 기록을 봐도 그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수행도 관(觀)-염(念)-의심법 등의 단계가 있는데 처음부터 의심법의 하나인 화두부터 들라고 하니 마치 유치원생에게 대학 공부를 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니 견성하는 사람이 나오기 힘들게 됩니다.”

내용의 진위는 차치하고라도 그는 ‘삼매관성’ ‘깨침의 필요충분조건’ ‘간뇌의 변연계’ 등 과학적 용어를 사용하며 논리 정연하게 자신의 주장을 풀어나갔다. 이외에도 그의 파격적 주장은 끝이 없었다. 흔히 불교하면 떠올리는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부처님의 뜻과 거리가 먼 것이며, 돈오점수는 깨닫지 못한 자의 궤변에 불과하다는 등….

서울대 수학과 83학번으로 그를 만난 뒤 출가한 일묵 스님은 “출가 전 불교서적만 200여권을 읽었지만 뭔가 잡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1993년 스승과 18시간 대화를 하면서 저의 불교 지식이 구슬 꿰듯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걸 느꼈습니다. 스승이 말하는 방식으로 수행하면 깨달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필생의 작업으로 금강경 해설에 몰두하고 있다.

“금강경은 부처님의 생각을 가장 잘 반영한 경전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금강경 해설은 제대로 된 것이 없습니다. ‘무릇 모든 상(相)이 상 아닌 것을 보면 곧 여래가 되리라’는 구절까지가 금강경의 핵심이고 나머지는 여담입니다. 내년 초에 첫 구절부터 자세히 설명한 해설서를 낼 예정입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