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朴智元)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18일 거액의 현대비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되기 직전 자신의 처지를 ‘꽃’에 비유한 대목이 한나라당의 공격 소재가 됐다.
박 전 실장은 구속수감 될 때 조지훈의 시 ‘낙화(落花)’의 첫째 연을 인용,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다만 한 잎 차에 띄워 마시면서 살겠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 시는 ‘꽃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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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은 20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박씨처럼) 국민을 우롱하고 거액의 뇌물을 챙긴 파렴치범이 지조 높은 선비들이 억울하게 귀양갈 때나 쓰는 표현을 했다”며 “박씨가 정녕 자신의 처지를 지는 꽃에 빗대고 싶다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열흘 넘게 붉은 꽃은 없다)’이 제격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 전 실장이 권력의 영화(榮華)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경험칙’을 외면했기 때문에 오늘의 처지에 놓이게 됐다는 얘기였다.
역설이라고 해야 할까. 박 전 실장은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으로 있던 2001년 5월 ‘화무십일홍’이란 표현을 인용하면서 “사람들은 이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지만 나는 이 말을 ‘정권을 잡으면 적어도 10년은 간다’는 긍정적 의미로 새기고 있다”고 말했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