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업종 종사자들을 만나게 하지 말라. 그들은 모이면 누군가에게 바가지 씌울 궁리만 한다.”
스크린쿼터 논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런 말을 꺼낸다면 너무 과격해 보이는가. 사실 위 문구는 기자의 창작물이 아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있는 구절이다.
200년이 넘은 너무 낡은 얘기라면 요즘 것을 꺼내보자. 인터넷 토론방에 가장 많이 있는 질문이다.
‘왜 유명배우들은 외제자동차를 즐겨 타면서 영화의 개방은 반대하는가.’
스크린쿼터 얘기가 나오면 영화인들은 영화의 ‘특별한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영화는 ‘문화주권’에 관한 산업이라는 주장. 그렇다면 음악 가요 연극 뮤지컬 미술 시 소설 출판 등도 개방 반대의 대상이 되지 않는가.
식량 통신 자동차 조선 철강 반도체는 영화보다 덜 중요해서 개방하고 있는가. 이들은 이른바 안보산업이다. 왜 영화가 이들보다 특별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설마 관련 장관이 영화감독 출신이어서 그렇지는 않을 것인데….
어떤 영화인은 “영화는 배급문제 때문에 개방하면 안 된다”고 한다. 국산영화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배급망 때문에 관객과 만날 수 없다는 것. 쉽게 말해 ‘유통과 물류’가 핵심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과연 영화만 그런가?
나아가 국산영화는 이미 배급망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 아닌가. 스크린쿼터는 상영일수의 40%를 국산영화에 할당하라는 제도지만 이미 국산영화의 시장점유율은 50%에 가깝다.
누구나 자기가 종사하는 산업은 특별해 보이기 마련이다. 미국의 경우 철강산업이 한때 ‘안보산업’ 명목으로 보호받았다. 당시 시계 제조업체나 피복업체 등이 같은 대우를 주장한 적이 있다. ‘정밀부품, 군복제작’ 등이 제시된 이유였다. 기자는 심지어 ‘과자산업의 특수성’을 이유로 개방에 반대하는 제과업자를 본 일도 있다.
제발 특수성 얘기는 그만하자. 그냥 경쟁이 싫다고 하자.
‘보호하면 경쟁력이 커진다’는 가설(假說)도 문제다. 현실의 경험은 대부분 거꾸로다. 설혹 가설이 맞는 경우에도 언제까지 보호해야 하는가. 1등 할 때까지?
문화주권은 지켜야 할 가치다. 그렇지만 비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비용은 최근 불거진 한미투자협정의 지연뿐만이 아니다. 직접 피해보는 사람이 있다. 취급상품을 선택할 기회를 제한당하는 극장주다. 그들에게는 영업권 침해다. 또 영화 관람객은 다양한 작품을 볼 권리를 빼앗긴다. 물론 수혜자는 국산영화 생산자들이다.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직무대행은 이렇게 제안한다.
“국산영화의 공익성이 꼭 필요하다면 그 비용을 엉뚱한 사람에게 바가지 씌워서는 안 된다. 전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재정으로 일정기간 극장 좌석을 사서 국산영화를 상영케 한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부담하는 비용이 얼마인지 좀더 명확히 계산된다. 그런 후에 납세자들에게 그 제도를 존속시킬지 물어봐야 한다.”
허승호 경제부차장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