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융건릉 앞에 선 수원대 이주향 교수. 그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삶을 되돌아본다고 말했다.-화성=김미옥기자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한 23일 오전 경기 화성시 태안읍 안령리 융건릉에서 ‘40대 소녀’를 만났다. KBS 제1라디오에서 ‘책 마을 산책’을 진행하고 있는 수원대 교양학부 이주향 교수(40·철학).
이 교수는 “수원대에서 차로 5분 거리인 융건릉 때문에 이 지역과 학교가 맘에 든다”고 말했다. 장대비때문에 사진 촬영에 애를 먹었지만 이 교수는 환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비 오는 날 찾은 융건릉이 새롭다는 것.
융릉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건릉은 정조대왕과 왕후의 묘역. 이곳에는 조선 후기의 성군으로 불리는 정조의 지극한 효심과 비극적인 가족사가 담겨 있다.
“지난해 4월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갑자기 인생은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능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에서 이 교수는 삶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가볍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가벼움은 생명의 속성입니다. 민들레 씨처럼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가볍게 날아가 뿌리내리고 싶어요. 반면 무거움은 중력의 코드입니다. 우리 사회의 중력은 자본주의, 물질주의입니다. 중력에서 벗어나 살고 싶어요.”
기독교 신자인 그는 요즘 불교에 흠뻑 빠져 있다. 중력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다. 그는 다음 학기에 ‘21세기와 종교’ 강좌를 개설할 계획이다.
“종교와 무덤은 기원이 같습니다. 무덤은 내세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종교 역시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했지요. 무덤 곧 종교는 모든 문화의 뿌리입니다.”
33개월 동안 진행한 ‘책 마을 산책’ 프로그램은 7월에 없어진다. 그는 아쉽지만 가장 행복할 때 그만둘 수 있어 괜찮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사람과 삶, 사랑, 일 등과의 이별을 소재로 특집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지식이 부족해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은 넘치지만 가슴이 부족해 망하지요. 이별은 한편으론 가슴을 채워줍니다.”
날씨가 맑을 때면 1시간 정도 융건릉 주위를 맨발로 걷는다는 그는 소나무 숲을 지나며 시 한 구절을 읊었다.
‘근심 속에 저무는/무거운 하루일지라도/자꾸 가라앉지 않도록/나를 일으켜다오/나무들이 사는/숲의 나라로 나를 데려가다오/거기서 나는 처음으로/사랑을 고백하겠다/삶의 절반은 뉘우침뿐이라고’(이해인의 ‘바람에게’ 중에서)
그는 융·건릉을 찾으면 인근 용주사와 보통리 저수지도 꼭 들러보라고 권했다.
화성=이재명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