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서안화차’는 변치 않는 사랑에 대한 욕망을 진시황의 영생에 대한 욕망에 비유했다. 사진제공 극단 물리
시안(西安)행 기차에 한 사내가 타고 있다. 진시황의 병마용(兵馬俑)을 보러 가는 길이다. 그는 사랑했던 동성(同性)의 친구를 죽여 토용(土俑)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왔다.
“내 친구를 잊지 못하네. 내 친구를 잊지 못하네. 오래오래 곁에 두고 싶어서…”
주인공 상곤(박지일 분)은 기차를 타고 가며 죽은 친구와의 일들을 회상한다. 기억의 껍질을 벗겨낸 듯 거친 골조와 앙상한 파이프가 드러난 무대에서 2층의 영혼들과 객석의 관객들은 그의 회상이 진행되는 1층의 무대를 내려다본다.
상곤이 기억의 시간을 따라와 현재와 만나는 시간에 기차는 시안에 도착하고, 친구의 토용이 놓인 1층의 공간은 병마용이 늘어서 있는 진시황의 지하궁전과 오버랩되며 두 시대의 영혼들이 병존하는 공간이 된다. 그곳은 죽음이라는 운명에 맞서려 한 진시황의 영생에 대한 욕망과 변치 않는 사랑에 대한 상곤의 욕망이 만나는 공간이다. (무대예술 이태섭·조각 임옥상)
동성 친구에게서 사랑을 갈구하는 상곤, 상곤의 동성애를 이용하며 여성과의 사랑도 즐기는 양성애자 찬승(이명호), 결혼 전날 낯선 남자에게 몸을 던지고 싶어하는 정선(장영남), 자신의 성을 생존의 도구로 적극 이용하는 상곤의 어머니(지영란), 여성의 발에 비정상적인 성적 집착을 보이는 홍가(최일화).
모두 ‘정상적’ 사랑으로부터 일탈된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지만, 작가 겸 연출가인 한태숙이 초점을 맞춘 것은 동성애자인 상곤이다. 사랑 역시 세속적 손익계산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관계’지만 상곤만은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
소수자들의 사랑인 동성애는 어쩌면 사람들의 ‘관계’에서 작용하는 사회적 권력이나 차별이 개입되지 않는 가장 순수한 사랑일지 모른다. 그래서 영국의 사회학자인 앤서니 기든스는 신뢰에 기초한 인간관계를 만들어갈 잠재력을 동성애에서 찾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것은 맹목적 순수성으로 드러날 가능성도 크다.
상곤은 사랑을 영원히 곁에 두기 위해 명호를 토용으로 만들었고, 이는 영원한 권세를 위해 병마용을 만든 진시황의 무모한 욕망과 다르지 않다. 두 욕망을 비교하며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던 관객들은 어느덧 그것이 자신들 내면의 욕망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냉정하게 기억을 더듬어가는 한편 비굴하게 연인에게 매달리는 이중적 성격의 인물을 소름끼칠 정도로 연기해 내는 박지일은 이제 새로운 과제를 갖게 됐다. 신들린 듯한 그의 연기만이 지나칠 정도로 무대를 압도한다는 것이다.
7월6일까지. 화~목 오후 7시반, 금 토 오후 4시반 7시반, 일 오후 4시반. 설치극장 정미소. 2만~3만원. 02-764-8760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