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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정미경/외국기업인들의 '속마음'

입력 | 2003-06-25 18:29:00


지난 주말 주한 미상공회의소(AMCHAM) 임원들은 국정홍보처가 제작하는 국정홍보 영상물에 출연했다. 외국기업인들이 대거 한국 홍보용 광고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 이들은 카메라를 보고 웃으며 “한국은 투자하기 좋은 나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을 직접 만나 한국의 투자환경에 대해 물어보면 얘기가 좀 다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거의 얘기를 들을 수 없다.

최근 조흥은행 사태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주한 외국기업인 10여명에게 전화를 해봤다. 반응은 거의 비슷했다.

“할 말은 많지만….” 그리고 들려오는 한숨소리.

언제나 이랬던 건 아니다. 현 정부 초기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계획을 내놓았을 때 외국기업인들은 한국이 어떻게 하면 싱가포르, 홍콩 등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에 대해 활발한 의견을 내놓았다. 요즘 외국기업인들은 말수가 부쩍 줄어버린 것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는 한 외국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외국인들의 정서를 이렇게 전했다.

“일부 부서만 남겨두고 관리본부를 인도로 옮겨갈 예정이다. 새 정부의 미숙한 노사정책과 경제정책 때문에 한국에서는 장기적인 사업계획을 세우기 힘들다.”

역시 익명을 요구한 다른 외국기업인은 말했다.

“대통령은 외국기업인 모임에서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하지만 실제 노동정책은 번번이 다르다. 더 이상 무슨 얘기가 필요하겠는가.”

두산중공업, 화물연대, 조흥은행 사태에 이르기까지 현 정부의 노사분규 해결 방식에 대한 불만이 주류였다.

윌리엄 오벌린 AMCHAM 회장도 현 정부의 최대 선결과제로 노동문제를 꼽으면서 “국제적 기준에서 봤을 때 노조측에 일방적으로 우호적인 한국의 노동법과 노동관행은 빨리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조사에서 한국의 노사관계 국제경쟁력은 조사 대상 30개국 중 30위를 기록했다. 외국인직접투자(FDI) 항목에서도 한국은 역시 꼴찌였다.

정부 당국자들이여, 카메라 앞에서 “한국은 투자하기 좋은 나라”라고 말하는 외국기업인들의 말만 듣고 당신들이 위안을 얻는다면 정말 큰일이다. 외국인들이 진심으로 ‘한국에서 기업하기 좋다’는 얘기를 할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이들의 조심스러운 지적에 귀 기울이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정미경 경제부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