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로 시민단체를 비롯한 비영리민간단체(이른바 NGO)의 비약적인 성장을 들 수 있다. 구미의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도 비영리단체의 활동이 대폭 증가하고 있다고 하니 가히 범세계적인 조류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주변에는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꼭 필요한 가치(약자에 대한 배려, 숨겨진 차별의 해소, 구조적인 불의의 시정, 자발적 선행, 정보의 불균형 해소)들이 존재하며 정부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틈새를 메우는 것이 바로 비영리단체들이다.
▼ NGO 감동 체험 로펌생활 접어 ▼
비영리단체와 변호사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변호사들은 자유 직업인으로서의 특성상 각종 비영리단체에 비상근 임원, 법률고문,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 아주 우연한 계기로 비영리단체의 활동에 관여하면서 여러 단체에 참가하게 되었고, 그러한 활동이 계기가 되어 전문분야까지 달라진 경우에 해당한다.
필자가 처음 관여한 비영리단체는 장애인 관련 단체였다. 당시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지 얼마 안 된 나는 한국밀알선교단이라는 곳에서 3개월간 상근 자원봉사자로 근무했다. 공교롭게도 자원봉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그 단체가 추진하던 장애아학교가 주민들의 반대와 행정관청의 비협조로 난관에 부닥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초등학교터였던 서울 강남 최고의 요지에 자폐아를 위한 특수학교를 짓는다니 주민들이 싫어할 만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장애아의 불과 5%만이 특수교육의 혜택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곳곳의 특수학교 공사가 주민들의 반대와 이를 의식한 지방자치단체들의 비협조로 장벽에 부닥치는 현실은 매우 안타까운 것이었다. 그때 나는 주민들에 대한 설득작업, 관할 관청에 대한 인허가 업무와 더불어 공사 방해를 막기 위한 소송을 담당했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장문의 이유를 들어 공사방해 중단을 명하는 가처분결정을 내렸고, 그 내용은 여러 신문의 사회면 톱으로 소개되었다. 이에 힘입어 ‘밀알학교’는 건축대상까지 받은 아름다운 학교로 건립되었고, 다른 장애아학교들까지 순조롭게 공사를 재개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변호사가 비영리단체에서의 활동을 통해 사회와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현장체험을 한 셈이다. 집값 하락을 걱정한 주민들의 당초 우려와는 달리 밀알학교로 인해 주변 아파트가 더 인기 있게 되었다는 얘기, 요즘은 장애아와 함께 공부시키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줄을 선다는 얘기는 언제 들어도 흐뭇한 얘기다.
그 후 다시 로펌에 복귀해 2년을 더 일했지만 그때의 비영리단체 활동 체험은 결국 나로 하여금 기존 직장을 떠나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에 적극 참여하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 비영리단체는 정부나 시장이 하지 못하는 일, 즉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한다는 데 깊은 매력이 있다. 내가 관여했던 소액주주운동은 소액주주를 봉으로 여기는 대주주나 경영진의 인식을 바꾸었고, 항상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소액주주들에게 주인의식과 참여의식을 고취시켰다. 최근 한 외국계 금융기관은 가장 단시간 안에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된 나라로 한국을 지목했다. 법이나 정부정책이 바뀐 것보다 이해관계자들의 인식과 태도가 변화된 것이 이러한 성과의 근본 원인이다.
▼ 전문인 도움 기다리는 곳 많아 ▼
요즘은 사법연수생들 상당수가 취업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변호사를 비롯한 전문인들의 도움을 기다리는 분야가 산재해 있다. 각종 비영리단체를 매개로 전문인들이 이런 소외된 분야에 관심을 가질 때 우리 사회는 좀더 살맛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약력 ▼
△1965년 생 △서울대 법대 졸업(1987) △미국 시카고대 법학 석사(1995) △김앤장법률사무소 근무(1992∼1997)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부소장(1997) △‘비즈니스 위크’가 아시아 스타 25인 중 한 명으로 선정(2003)
김주영 변호사·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