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상급 노동단체가 주도하는 강성 ‘정치투쟁’이 일선 조합원들의 외면으로 하투(夏鬪)의 파괴력이 줄어드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임금 및 근로조건 등 조합원들이 피부로 느끼는 문제가 아니라 사측이 어찌해 볼 수 없는 법이나 제도 개선을 이유로 집행부가 파업을 밀어붙이는 데 대해 조합원들이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민들의 비난여론도 집행부와 조합원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상급단체의 지침에 따라 무리하게 파업을 벌이는 데 대해 시민들에 앞서 조합원들이 심판을 내리는 것”이라며 일부 강성노조의 자세 변화를 촉구했다.
▽현대자동차 파업 찬성률 저조=현대자동차 노조는 24일 쟁의행위 돌입 여부 투표에서 재적조합원 3만8917명 중 54.8%의 찬성으로 ‘간신히’ 쟁의행위를 가결했다.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파업을 벌여 ‘강성노조’의 대명사가 된 현대차 노조의 파업찬성률이 이처럼 낮은 것은 1987년 노조 출범 이후 처음이다.
한 조합원은 25일 “주5일 근무도 좋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것도 좋지만 노동계를 대신해 재계와 ‘대리전’을 치르며 뜬구름 잡는 식의 파업을 벌이는 데 대해서는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와 생각이 비슷한 동료들이 예상밖으로 많다”며 “조합원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집행부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반대표를 던졌다”고 덧붙였다.
▽지하철 파업의 교훈=24일 파업에 들어갔던 부산지하철 노조가 하루 만에 파업을 풀고 정상업무에 복귀한 데는 전동차 운행의 핵심인 기관사들의 불참이 결정적이었다.
23일 파업전야제 때만 해도 기관사 402명 중 근무인원을 뺀 대부분이 참가했으나 정작 파업 당일 새벽이 되자 집단으로 빠져나갔다. 사측과의 심야협상에서 임금인상, 안전위원회 설치 등에 거의 합의했으나 예산상 회사가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2인승무제 △전동차 내장재 불연재 교체 등을 계속 요구하자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한 것.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도 조합원들에게는 부담이었다. 지하철참사를 겪은 대구지하철 노조의 경우 상급단체의 무리한 요구를 비난하는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조합원들이 동요하면서 집행부가 협상을 서둘러 파업 9시간 만에 이를 철회했다.
인천지하철 노조 역시 갈수록 이탈하는 조합원이 늘어나 25일에는 절반 이상이 업무에 복귀했다.
인천지하철 노조의 한 노조원은 “이번 파업은 조합원의 복지 향상보다 상급단체인 궤도연대의 공동 요구조건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온건 실리 노조로의 변화=올 들어 65일간 파업을 벌였던 두산중공업 노조는 25일 민주노총 파업에 간부 70여명만 참가하고 조합원 3600여명은 정상 근무했다.
노조의 한 간부는 “우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안을 놓고 파업하자고 하는데 누가 발 벗고 나서겠느냐”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강성 일변도의 노사문화를 배척하고 실리를 요구하는 조합원 의견을 반영해 온건성향으로 변신을 꾀해 올 임단협 요구안에서 상급단체인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이 요구안으로 내건 주5일 근무제 실시와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을 제외했다.
한국노총은 30일의 총파업에 20만명을 참가시켜 세(勢)를 과시한다는 목표로 전국택시노련, 자동차노련, 금융노조 등을 독려하고 있지만 일선사업장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는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울산=정재락기자 raks@donga.com
인천=박희제기자 min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