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뤄가는 기분이 상큼한 매실 맛입니다.”
24일 오후 막바지 매실 따기가 한창인 경북 칠곡군 기산면 ‘송광 설중매’ 매실농장. 2만여평에 가득한 매실나무를 바라보던 서명선(徐明善·47)씨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다부진 표정을 지었다.
서씨는 2000년 3월 20년 근무한 대구의 한 신문사 부장을 끝으로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홀로서기’를 시도했다. 토종매실 재배로 ‘제2의 삶’을 가꾸기로 마음먹은 지 3년. 이제 그는 결코 쉽지 않은 서울의 대형 백화점에 생매실과 매실가공품을 납품할 정도로 성장했다. 신화(神話)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농촌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퇴직을 몇 년 앞둔 98년 바로 지금 이 자리에 감자를 심었어요. 처참할 정도로 실패했습니다. 작목선택을 잘못한 것입니다. 돌아보면 그때 실패에서 많이 배웠고요.”
서씨는 함께 직장을 다니다 먼저 퇴직한 선배들이 막연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차근차근 홀로 설 준비를 했다. 평소 동경하던 농업분야에서 승부를 내보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우선 농업에 대한 깊은 사랑이 몸에 배도록 해야 합니다. 신문사 일과 농업은 아주 다른 분야라 그냥 덤비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평생 토종매실을 연구해온 한 교수님으로부터 씨를 받아 몸을 바치기로 이를 악물었지요.”
매실과 뒹군지 3년. 서씨의 ‘송광 설중매’는 전국적으로 꽤 유명한 브랜드가 됐다. 2000년 6월 경북테크노파크에 입주한 이후 △산업자원부 신기술 창업보육 사업자 선정 △국립농산물 품질관리원 무농약 친환경 농산물 인증 △한국유기농업협회 친환경 우수농산물상 △중소기업청 벤처기업 확인 △대구경북 중소기업수출지원센터 수출유망기업 선정 △농림부 2002 한국전통식품 베스트 5 동상 수상 등이 그동안의 성적표. 서씨가 매실과 함께 얼마나 치열한 연구를 했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매실강국인 일본을 넘나들며 공부하고 국내 농업벤처대학에도 대입 시험을 앞둔 고3학생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농업에서 성공하려면 농부 개념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유통에서 실패하면 헛일이기 때문입니다. 유통 마인드가 부족해 애써 지은 농사를 망가뜨리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올 6월 서씨는 토종매실 25t을 수확했다. 10t은 생매실로 판매하고 나머지는 매실차 매실식초 매실고추장 등 20여가지 매실가공식품을 만든다. 지난해는 6억 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10억원이 목표. 토종매실이라 kg당 가격도 일반매실에 비해 2배 가량 비싸다.
마침 경북대 농대 학생 10여명이 매실농장을 찾아왔다. 서씨에게서 농업의 새로운 방향을 배우기 위해서다. 학생들과 함께 온 류진춘(柳秦春·농업경제학) 교수는 “서씨는 농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잘 보여 준다”며 “학생들이 농업의 가능성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좋은 케이스”라고 말했다.
서씨는 욕심이 많다. 매실 강국인 일본 시장에 진출하려는 것과 칠곡 농장 일대를 매실을 체험하고 느끼는 문화공간으로 가꾸고 싶은 우아한 꿈이다. 매화꽃이 만발하는 4월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진한 매실 향내를 맡으며 취하고 싶다는 것.
“매화는 예로부터 군자(君子)라고 일컫지 않습니까. 매실은 몸에 좋고요. 새로 심은 매실나무를 보면 힘이 불끈 솟습니다.” ‘매실박사’ 서씨의 매실 예찬은 끝이 없었다.
칠곡=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