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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패션in패션]그리스 女神 거리 누빈다

입력 | 2003-06-26 17:22:00

드레이프와 플리츠를 한껏 살리는 방식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의상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신작들. 왼쪽부터 미우미우, 돌체앤드가바나, 이브생로랑,뉴욕인더스트리 (사진제공 퍼스트뷰코리아)



‘그리스를 주목하라.’

올 봄, 여름을 겨냥해 열린 해외 패션 컬렉션에서 돌체 앤드 가바나를 비롯해 주요 디자이너들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 복식에서 영향을 받은 스타일을 대거 선보였다.

고대 그리스, 로마 풍은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주름과 곡선미가 생명이다. 컬렉션에서는 이를 살리는 의상들이 현대적인 형태로 재현됐다.

특히 이탈리아 밀라노 컬렉션에서는 쇼장의 인테리어까지도 로마를 테마로 연출한 예가 많았다. 로마 의상의 대부분이 그리스에서 영향을 받아 실용적으로 변형된 디자인이므로 로마풍 의상들도 ‘그리스풍’의 범주에 넣을 수 있겠다.

스포츠와 캐주얼의 열풍이 계속되고 있는 국내에서는 지극히 우아하고 여성적인 스타일보다 이를 캐주얼하게 변형한 의상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부드럽게 주름진 상의가 많이 나왔다.

●고전을 찾아서

새삼 2003년에 불어 닥친 그리스 열풍의 근원은 무엇일까. 전 세계는 뉴 밀레니엄의 시작을 희망과 기대로 바라보았다. 새로운 기술이나 과학으로 여러 문제점들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심리가 있었다. 그러나 한 해 두 해를 지나며 경제적 불황과 지구촌 특정 세력간의 치열한 다툼, 심지어 전쟁까지 경험하면서 20세기를 지배했던 획일적인 글로벌리즘의 붕괴를 감지하게 됐다.

구치의 디자이너 톰 포드가 메트로폴리탄의 '가디스' 전에 헌정한 고대 그리스풍의 드레스(사진제공 구치코리아)

현재 대다수 세계인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은 패션계에도 ‘혼란을 가중시키는 도발적인 변화보다는 안정을 찾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했다. 안정에 대한 관심은 익숙하고 편안한 ‘고전(古典)’을 돌파구로 삼았다.

서구 패션계에서 ‘고전’은 그리스풍이었다. 서구 패션의 모체인 고대 그리스의 의상들은 다양한 주름(플리츠)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장식성이 강하면서도 착용감이 편한 플리츠는 현재까지 스커트, 드레스 등에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내년에 열릴 예정인 아테네 올림픽은 서구 패션의 모체, 그리스를 다시 한번 주목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제1회 올림픽이 열린 이곳에서 2004년, 21세기의 첫 올림픽이 막을 올리는 것이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여신

고전적인 요소에 대한 현대인들의 관심은 현재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여신(Goddess)’ 전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5월 1일부터 시작돼 8월 3일까지 계속될 예정인 이번 전시회는 ‘판도라의 상자’ ‘변형(The Metamorphoses)’ ‘피그말리온의 갈라테아’ ‘신화적인 디테일들(Mythic Details)’이라는 4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주제를 통해 그리스 석상에 나타난 드레스부터 현대 디자이너에 의해 재창조된 드레스 작품들이 실물과 함께 회화, 사진 등의 작품과 어우러져 전시되는 이 행사는 고전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변화 발전하며 2500년을 지속할 수 있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판도라의 상자’라는 주제에서는 로마 의상에 영향을 준 키톤이나 히마티온(천을 온 몸에 둘러 입는 그리스 전통 복식 이름)과 같은 고대 그리스 의상의 모습을 석고상을 통해 보여준다. ‘변형’이라는 주제에서는 이런 클래식한 요소가 현대에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를 프라다나 발렌시아가의 현대적인 의상들을 통해 선보인다. ‘피그말리온의 갈라테아’에서는 좀 더 예술적으로 변형된 그리스 스타일의 의상들이 장 폴 고티에나 크리스티앙 디오르, 돌체 앤드 가바나 등의 아방가르드한 드레스와 함께 전시되며, 마지막으로 ‘신화적인 디테일’에서는 구치, 베르사체의 드레스를 통해 플리츠 라인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패션 그룹 구치와 보그, GQ 등을 출간하는 미국의 미디어그룹 컨데나스트의 후원으로 성사된 이 전시회는 그리스 고전주의에 대한 패션계의 관심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그리스풍 리조트룩

그리스는 지중해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고전의 부활과는 또 다른 매력적인 이슈를 던진다. 지중해 리조트에서 즐기는 유유자적한 일상이나 요트와 같은 고급 레포츠의 이미지는 여름 시즌의 불멸의 주제. 특히 지중해를 주제로 한 스타일은 좀 더 고급스럽게 제안되는 경향이 있다.

이미 올 봄, 여름 컬렉션에 남성복의 구치나 이브생로랑에서는 리조트 웨어를 주제로 삼아 편안한 실루엣에 고급스러운 감각을 더한 고급 휴양지 의상을 내놓았다. 주로 슈트나 캐주얼을 중심으로 하던 컬렉션에서 리조트를 주제로 삼은 것은 이례적이다. 여성복의 샤넬이나 프라다에서는 고급 사교클럽을 연상시키는 레트로(retro) 스포츠웨어를 선보였다. 1920∼1930년대 초기에 등장했던 수영복 스타일을 그대로 현대적인 소재로 제안했다.

보통 일급 디자이너들이 제안한 새 스타일은 이듬해까지도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올 여름 선보인 그리스풍의 리조트웨어 스타일은 이번 시즌은 물론, 아테네올림픽이 열리는 내년 여름이면 국내 시장에도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여러모로 그리스라는 소재는 오래된 불황 속에 허덕이는 패션계에 반가운 이슈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현주 퍼스트뷰코리아 패션컨설턴트